[야고부] '퀵백'

입력 2006-09-02 10:12:58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안녕하세요'와 '빨리빨리'라 한다. 간단한 인사말을 배우면서 우리 특유의 기질에 대한 반응을 보이는 셈이나 되짚어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양은 냄비처럼 빨리 끓고 식는다고 '냄비 근성'이라 부르기도 하는 '빨리빨리 문화'는 긍정적인 면 못잖게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며 서두르는 바람에 폐단을 낳기 십상이지 않은가.

○…양반 문화가 지배하던 조선조까지만 해도 '느긋함'과 '여유'가 내세울 만한 우리의 정서였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초고속 압축성장 시대'가 열리면서 '빨리빨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오늘의 우리나라를 있게 하는 동력이 됐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정보기술(IT)'생명과학(BT) 등의 첨단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보유하게 된 것도 긍정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젊은 세대의 특징을 '퀵백(Quick Back)'이라 하는 모양이다. 한 광고기획사가 만든 新造語(신조어)로 '자신의 행동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메신저로 말을 걸었을 때,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 때, 인터넷으로 정보 사냥을 할 때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조바심이나 짜증을 내기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다. '퀵백'이 심한 경우 '디지털 조급증'에 빠져 버린다.

○…언젠가 대학생 대상의 한 설문조사 결과 우리나라 이미지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빨리빨리'이며, 그 다음이 '정보통신'이었다. 응답자의 절반 정도는 '조급증+IT'가 대표적인 이미지라는 반응이었던 거다.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조급증 기질에 디지털 인프라가 보태지면서 생긴 현상으로 이미 그 자각 증세조차 희미해져 가고 있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조급증'에 대해 개개인의 정보 처리량이 늘면서 생긴 스트레스성 질환이라고 진단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니 지체가 싫어졌으며, 그런 '질환'이 특히 젊은이들의 습관과 문화를 지배하게 됐다는 거다. 게다가 '퀵백 시대'는 통신망에 매달리며 조급증을 심화시켜 人性(인성)까지 황폐하게 할까 우려된다. 현대의 코드는 '속도'라지만 '느림의 미학' 회복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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