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로 꽉찬 '부킹의 천국'…나이트클럽 부킹 르포

입력 2006-08-31 16:34:29

24일 밤 10시, 대구 동구 신천동의 성인나이트클럽. 대구에선 부킹 잘 되고, 물 좋기로 소문난 곳 중의 하나. 웨이터들이 삼삼오오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느라 분주했다. 다소 이른 시간인지 플로어(춤추는 무대)는 그렇게 붐비지 않았다. 손님이 많을 때는 400, 5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30, 40대 손님들이 많았지만 50대가 넘어 보이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고파

취재진은 클럽 안의 룸을 잡고 웨이터에게 양주를 주문했다. 룸에는 노래연습기계가 갖춰져 있었다. 웨이터에게 3만 원을 쥐어 주며 부킹을 부탁했다. 웨이터는 '사장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허리를 접어 깍듯이 인사를 한 뒤 "이곳엔 여성 손님들이 남성보다 많기 때문에 부킹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10여 분 뒤 40대 여성 2명이 웨이터의 손에 이끌려 룸에 들어왔다. 이 곳에 온지 20분도 안됐다는데 벌써 한 여성은 술에 취한 듯 묻는 말에 횡설수설했다. 같이 온 여성이 "친구 5명이 함께 왔는데, 한 잔 마셨으니 가야겠다."며 술 취한 친구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5분 쯤 지났을까. 40대 후반 여성 2명이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서 들어왔다. 나이트클럽에 자주 오냐는 질문에 한 여성은 "가정주부가 어떻게 자주 오겠냐. 모처럼 친구와 함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왔다."며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온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오면 안 되냐?"고 묻자, 그 여성은 "사장님 같으면 마누라와 함께 오고 싶겠냐."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보였다.

취재진의 '작업' 수준이 떨어져서인지 이들도 술 한두 잔 마시곤 나가버렸다. 하지만 웨이터에게 준 팁의 '약발'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 뒤로도 한 두 차례 새로운 여성들이 취재진의 룸을 잠깐씩 다녀갔다.

◇나이트는 부킹의 천국

밤 11시를 넘어서자 어느새 클럽 안의 테이블은 손님들로 꽉 차고, 플로어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무대를 휘젓는 밴드와 댄서들의 강렬한 음악과 율동에 맞춰 사람들은 몸을 흐느적거렸다. 옆 사람의 말소리조차 분간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남녀 손님들은 밀담을 주고받았다. 혼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30대 중반 여성은 "클럽에 들어와서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한 이후 2시간 가까이 됐는데 한 테이블에 같이 앉을 기회가 없었다."며 "서로 부킹을 받아서 왔다갔다 하다보니 그런데, 이런데서 아무 생각 없이 남성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지 않으냐."고 했다.

잠시 끊어졌던 부킹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에 웨이터가 데리고 온 여성들은 예사롭지 않은 50대 3명. 부킹 문화에 익숙해서인지, 아니면 밥 그릇 수의 힘인지 자리를 비집고 앉으며 "동상, 한 잔 따라봐라. 누님들 하고 같이 놀게 돼 기쁘제?" '싫다, 좋다.'는 말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이들은 삽시간에 분위기를 제압했다. 술기가 오른 한 여성은 "인생, 뭐 별기가? 이렇게 술 마시고 노는 기 최고다."며 태진아의 '동반자'를 부르며 몸을 흔들어댔다. 이전 여성들과 달리, 이들은 나갈 눈치가 아니었다. 술을 따라서 돌리고, 노래책도 돌리고….

취재진은 휴대전화를 받는 척하며 자리를 잠시 피했다. 화장실에 가 보니 '부킹 성공 수칙'이 벽에 붙어 있었다. '△2차에만 목숨을 걸지 마라, 너무 욕심을 내다가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여성은 외모보다는 단정한 용모를 좋아 한다…."

◇함께 술 먹고, 춤 추고, 그리고…

부킹은 이젠 나이트클럽의 문화가 됐다. 모르는 이성과 만남을 통해 일상에서 한 번쯤 탈출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부킹이 성행하는 게 아닐까. '원 나이트 스탠드'(one-night stand, 하룻밤만의 정사)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대구 수성구의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경력 10년의 한 웨이터는 "나이트클럽에서 부킹을 신청하지 않는 남성이나 부킹을 거부하는 여성은 거의 없다. 상당수 손님들은 플로어엔 한 번도 나가지 않고 오직 부킹에만 목숨을 걸고 있다."며 "대부분 부킹은 남녀가 합석해 술 한두 잔 같이 마시거나 함께 춤을 추는 수준인데, 2, 3차를 함께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했다.

20분쯤 지났다. 이젠 가고 없겠지? 하지만 그 여성들은 취재진의 룸을 점령하고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있던 술과 안주들은 흔적 조차 없었다. 결국, 웨이터를 불러서 이들을 모시고 가라고 했다. 그 뒤 그 여성들은 잊을 법 하면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곤 했다. 그들은 여러 번 거절을 당한 뒤 나중엔 다른 테이블의 남성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새벽 1쯤 되자 클럽 안의 열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플로어에서는 여전히 요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손님들의 함성이 흘러나왔다. 술에 골아 떨어져 탁자에 얼굴을 박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비틀거리며 동료나 웨이터의 부축을 받는 손님들도 있었다. 어떤 테이블에는 부킹에 성공했는지 벌써 얼굴을 비비거나 몸을 엉기는 사람들이 있고, 한쪽에선 남녀 짝을 맞춰서 '원 샷'을 소리치며 남은 술을 비우고 있었다.

◇만취한 '골뱅이', 내일이면 잊으리

화장실 입구, 통로 등에는 '골뱅이'(나이트클럽에서 만취한 여성을 지칭, 술에 취하면 세상이 뱅뱅 도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불은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한 웨이터는 "골뱅이들만 찾는 남성들이 더러 있는데, 뭐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냐."며 "보통 남성들이 부킹을 해서 성공하면 함께 나가서 노래방이나 술집으로 2차를 가거나, 다음에 만날 약속을 하며 전화번호를 받아놓는데, 일부 골뱅이족들은 바로 모델에 가거나, 룸에서 성적 접촉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새벽이 깊어가자 사람들이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클럽을 나온 일부 남녀들은 택시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남녀가 짝을 이룬 한 일행은 '2차는 노래방'이라며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로 사라져갔다.

나이트클럽. 성 개방 풍조에 편승한 탈선의 현장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어쨌든 그 곳은 성인 남녀들의 해방구이다. (2006년 8월 31일자 라이프매일)

글·사진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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