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양파를 까며

입력 2006-08-31 07:48:29

세월의 물살

무딘 부끄러움에도

사랑으로 옷 벗는 일,

여전히 눈물겹다

매운 맛으로 가리고

감싼 속이라는 것이

꽉 찬 허공이라는

폭로,

허기의 중독성은

습관처럼 옷을 벗기지만

몸이 쓰는 문장은

13층 난간 밖을 내딛고,

눈 감고

허공의 방

껍질 속의 껍질

뽀얀 살결의 슬픈 맛 본다

-강여울-

'양파'를 깔 때, '매운 맛'을 견디고 까는 것은 그 속에 있을 더 부드러운 속살(영혼)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내 만나는 세계는 '꽉 찬 허공'이다. 그럼에도 양파를 보면 반복적으로 까는 것이다. 일종의 중독이다. '몸'으로 하는 사랑은 양파를 까는 일과 같다. 양파의 껍질을 벗기면 '속살'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껍질'이 나타날 뿐이다. 양파의 몸은 전부가 껍질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이 쓰는 문장' 즉 '몸의 사랑'도 이와 같다. '몸'은 '영혼'을 담는 껍질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옷 벗'어도 결국은 '껍질 속의 껍질'인 '뽀얀 살결의 슬픈 맛'을 보게 될 뿐이다.

몸의 사랑만 보이는 세속이여. 그 몸 앞에서 절망하리.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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