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부자로서 사는 법

입력 2006-08-29 07:36:38

얼마 전 장애인을 돕는데 써 달라며 파지를 주워서 모은 돈 900만 원을 장애인단체에 전달한 대구의 정성란 할머니.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가 온종일 손수레를 끌며 종이를 주워서 생기는 수입은 많아야 4천 원 안팎이란다. 그 할머니에게 900만 원은 무려 7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종이를 줍고, 한 푼도 쓰지 않아야 마련할 수 있는 큰 돈이다.

어디 그 분 뿐인가? 평생 동안 김밥을 말아서, 젓갈을 팔아서, 삯바느질을 해서 모은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장학재단과 대학발전을 위해 내놓으신 할머니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 기부에는 할머니 부대만 있다.'는 이야기가 생길 정도이다. 물론 할머니들 이외에 고액기부자들도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 1조 원을 기부했고, 앞서 또 다른 기업은 800억 원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기부는 '억지춘향'이요, '여론수습용'이다. 그 기부들은 불법이나 편법 상속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뒤 기업주가 구속되거나 기업이 수사를 받게 되는 시점에 발표된 것이어서 '면죄부'를 바라는 기부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주식투자의 달인',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렌 버핏은 36조 원에 이르는 재산을 빌게이츠 재단에 기부했다. 워렌 버핏은 자식이 셋이나 있는데도 그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그는 "부가 왕조적으로 세습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한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상업적 자본주주의 대표국가인 미국이 미울 때가 많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점은, 바로 미국 부자들의 기부 문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65세가 되던 1900년에 잘 나가던 철강회사를 5억 달러에 팔았다. 그는 그 돈으로 미국 전역에 수많은 도서관을 건립했으며, 교육진흥기금과 장학기금 등에 기부했다. 카네기는 84세가 되던 해 '돈을 벌기보다 쓰기가 어렵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카네기의 정신은 록펠러, 포드에 이어 오늘날 워렌 버핏, 빌 게이츠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전통이 미국사회에서 부자들이 존경받게 된 이유다. 더욱이 웨렌 버핏과 빌 게이츠 같은 미국 부자들은 미국 정부의 상속세 폐지 움직임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상속세 폐지는 혐오스런 시도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균등을 보장하고 부유층에 특혜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속세는 존속돼야 한다." 그들의 생각은 우리 현실에서는 상상 밖이다.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 사회는 안정을 잃게 된다. 가진 자의 기부, 그것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보험이다. 기부를 더 이상 할머니들에게만 맡기지 말자.

김교영 라이프취재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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