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나정(羅井) "우물 아닌 건물의 중심기둥 구멍"

입력 2006-08-20 11:39:37

사찰에서 목탑을 세울 때 그 가운데 불탑 건축물 전체를 지탱하기 위해 심주(心柱)라고 하는 나무 기둥을 세운다. 최소 10m 이상 되는 거대한 나무기둥을 고대인들은 어떻게 세웠을까?

그 오래된 의문이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 19-1번지 일대 소재 군수리절터(사적 44호)의 백제시대 목탑이 있던 곳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마침내 풀렸다.

아울러 이를 통해 신라건국시조 박혁거세가 탄강한 곳이라는 전설이 서린 경주 나정(羅井)의 이른바 '우물'이란 곳 또한 우물이 아니라 팔각형(혹은 원형) 건물의 중심기둥이 섰던 자리였음이 판명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송의정)는 4-6월 군수리절터 중 현재의 목탑지 정중앙 지하에 자리잡은 심초석(心礎石. 중심기둥 받침돌) 주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중심기둥을 일단 수평으로 뉜 다음, 기둥 밑둥을 지하에 위치한 심초석으로 밀어넣기 위해 의도적으로 땅을 파고 들어간 흔적을 확인했다고 18일 밝혔다.

조사 결과 심초석은 현재의 지표면 기준으로 194㎝ 지점에서 윗면을 드러냈다. 화강암재 대리석을 이용한 심초석은 아래는 둥글고 상면은 사각형인 상방하원(上方下圓) 형태였으며, 상단과 하단은 약 5㎝ 가량 되는 높이 차이가 났다. 크기는 상단이 한변 94㎝인 정사각형이며, 하단은 동서 130㎝, 남북 138㎝였다.

백제인들은 이 심초석을 안치하기 위해 사각형 모양으로 2m 이상 되는 깊이로 땅을 팠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이렇게 수직으로 파고 내려간 심초석 구덩이 중 서쪽 측면 맨 아래쪽에서 시작해 비스듬히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면서 올라가다가 마침내 지표면과 연결되는 긴 고랑과 같은 시설(길이 474, 너비 180㎝)이 확인됐다.

조사단은 바로 이 '고랑시설'이 거대한 목탑 중심 나무기둥을 심초석 위에 안치하기 위한 고안임을 발견했다.

송의정 소장은 "수 십m가 되었을 거대한 나무기둥을 지하 2m 지점에 위치한 심초석 위에 그대로 세우기는 기술적으로 매우 곤란했을 것이므로, 이런 난제에 봉착한 백제인들이 심초석 지점까지 땅을 비스듬하게 파고 들어간 다음, 여기에 기둥을 뉘어 놓고서 반대편 기둥 끝을 잡아당겨 세웠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군수리 목탑지 중심기둥 안치 복원도 참조)

이와 같은 '뉘었다가 세우기' 방식은 일본에서 호류지(法隆寺) 오층목탑에서 확인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중국 고대 목탑에서도 같은 방식이 보고됐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목탑 심주 세우기 방식이 확인된 것은 군수리 절터가 처음이다.

군수리 절터 목탑에서 이 방식이 구명됨에 따라 중앙문화재연구원이 최근 연차 발굴조사를 벌인 경주 나정 유적의 이른바 '우물' 흔적 또한, 우물이 아니라 기둥 심초석을 안치하기 위해 마련된 시설임이 드러났다.

왜냐하면 나정 유적 또한 지하 2m 가량 되는 지점에 심초 시설과 같은 흔적이 발견된 것은 물론, 그 한쪽 면에서 지상으로 비스듬히 연결되는 도랑과 같은 시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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