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유혹] 을미사변때 도입…고종은 '애호가'

입력 2006-08-17 15:23:36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90년 전후로, 에디오피아의 양치기 소년 칼디가 커피를 처음 발견한지 1천 300여 년이 흐른 뒤이며, 네덜란드 상인에 의해 일본에 전래된 지 170년 후의 일이다.

△ 고종은 커피 애호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커피가 들어온 것은 1895년 을미사변으로 고종임금이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있을 때 러시아 공사 웨베르가 고종에게 커피를 권했던 때로 알려져 있다. 고종은 세자(순종)와 함께 약 1년 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마셨고 덕수궁으로 돌아온 뒤에도 즐겼다고 한다. 그때부터 커피는 궁중내의 기호 식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또 러시아 공관에서 고종의 시중을 들던 손탁이라는 독일계 여인이 서울시 중구 정동 29번지의 왕실 소유땅을 하사 받아 손탁호텔을 세웠는데, 여기에 최초의 커피판매 다방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고종은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된 후 자주권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다가 1919년 승하했다. 이때 평소 고종이 즐기던 커피에 독약을 태웠다는 소문이 퍼졌으나 증거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 일제시대 문화인들 즐겨

3'1운동이 지나고 일본인들이 명동에 '멕시코'라는 다방을 열었다. 이때부터 다방은 문화인들이 차를 마시며 환담하는 장소로 발전했다. 당시 커피는 상류층 사람들과 문인들이 즐겼다. 1930년대 다방은 서울의 명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며'에는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의 알을 찧어 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는 내 모양을 어린애답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또 즐기면서 이것이 생활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이 시기에 서울의 명동과 충무로, 종로 등에 커피점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당시 민간에서는 커피를 '양탕국'으로 부르기도 했다. 실제로 고종은 커피를 보약처럼 사발에 부어 마셨다는 이야기도 있다.

△ 1980년대 후반 커피 전문점 등장

해방 후에는 미군 PX를 통해 흘러나오는 원두커피와 인스턴트 커피가 주류를 이뤘다. 특히 한국전쟁으로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가 미군 PX를 통해 유통됐다. 인스턴트 커피의 간편함과 인력절감의 장점은 커피하면 인스턴트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인스탄트커피를 생산한 곳은 1970년 동서식품이었다.

1960년대 다방문화는 명동의 통기타와 청바지 문화로 넘어가기 전까지 거의 15년 동안 번성했다. 1970년대 대표적인 다방이라면 서울 동숭동의 '난다랑'을 들 수 있다. '난다랑'은 원두커피를 판매하여 전문 커피숍의 바람을 일으켰다.

1980년대 후반부터 어둡고 고전적인 지하의 다방에서 탈피, 밝고 공개적이며 좀더 대중적인 커피전문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88년경부터 원두커피가 대중화되면서 주 음료가 숭늉에서 커피로 바뀌어갔다.

◇ 커피의 역사

커피의 유례에 관한 설은 여러가지이지만 그 중 대표적인 두 가지 중 하나는 기원전 6~7세기 경 에디오피아의 '칼디'란 이름의 염소치는 소년이 처음으로 커피 열매를 발견했다는 주장이다. 염소들이 작은 나무에 달린 빨간 열매를 먹고 나면 흥분을 하고 밤에 잠이 들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후로 사원에서 밤 기도를 위한 음료로 이용됐다고 한다.

또 하나는 이슬람 승려 오마르가 커피를 발견했다는 설이다. 기도와 약으로 병자를 치료하는 능력이 있었던 오마르. 그는 왕으로부터 쫒겨나 예멘의 모카항 근처 사막을 떠돌다가 커피 열매를 발견하고는 이를 달인 물로 허기를 채웠다. 그랬더니 신기하게 온 몸의 피로가 풀리고 하루종일 힘이 솟는것이 느껴졌다. 오마르는 이 새로운 음료를 환자의 치료에 이용했고, 결국 그는 왕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모카의 성인으로 추앙받게 됐다고 한다. (2006년 8월 17일자 라이프매일)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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