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재정 거덜내는 '중앙복지' 해결책 없나?

입력 2006-08-15 10:04:44

"재원 없는 중앙복지는 지방복지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만 심화시킬 뿐입니다."

대구 일선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의 하소연이다.

열악한 지방정부 재정에 아랑곳없이 중앙 복지정책만 쏟아지는 한, 지방 간 복지 불균형은 영원히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

대구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정부가 중앙 복지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고민하고, 지방정부의 복지예산 분담률을 전면 조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막무가내 중앙복지

지난해 정부는 분권교부세 제도를 도입했다. 140여 개에 이르는 단위 사업별 국비 보조분을 한꺼번에 책정, 전체 재정 운용을 지자체 자율에 맡기겠다는 취지.

하지만 복지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67개 사업을 하나로 묶은 복지 분야 분권교부세는 노인, 장애인, 사회복지시설 운영비에 몰려 있는데 정부는 시설수, 종사자수 등으로 광역 시.도별 분권교부세 규모를 정했지만 인건비 증가분과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아 모든 지자체가 당초 예산 범위를 초과하는 사태를 맞고 있는 것.

올해 335억 원을 복지 분야 분권교부세로 지원 받은 대구시의 초과 예산은 45억 원 안팎. 국비마다 따라 붙는 지방 분담비 36억 원을 합하면 모두 81억 원이 모자란다.

그러나 대구시 관계자는 "이번 추경 예산에서 분권교부세 추가 확보는 포기했다."며 "가용재원이 남아도는 서울과 수도권 지자체들이야 부족분을 채우기 쉽겠지만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대구는 돈 구할 데가 아예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무료 암진단과 치매시설들이 속속 들어서는 마당에 대구는 있는 복지시설도 제대로 꾸려가기가 힘든 실정.

이에 따라 대구시는 이달초 전국 시.도지사 협의회에서 '분권교부세의 국비 전환 및 지방 분담률 조정 또는 전액 보전'을 정부에 건의했지만 아직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빈익빈 부익부

지자체별 복지수요와 재정자립도를 감안하지 않고 정책만 쏟아내는 중앙 정부의 복지 관행은 광역과 광역뿐만 아니라 기초자치단체 간 복지 불균형까지 부르고 있다.

인구 45만 명의 대구 북구와 42만 명의 수성구. 올해 전체 재정에서 복지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42.8% 대 41.3%로 똑같이 40%를 넘겼지만 체감지수가 전혀 다르다. 북구는 5년전 30.1%에서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수성구는 2001년 42.2%보다 오히려 줄어든 수치.

북구의 복지재정 증가분은 정부의 미취학 아동 보육료 지원 확대와 맞물려 있다. 올해 북구 보육료 지원액은 214억 원(구비=53억 원)으로 수성구 127억 원(구비= 32억 원)의 2배에 가깝다. 대단위 택지개발에 따라 임대 아파트가 많고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북구로 젊은 신혼부부들이 몰려들면서 보육료 지원 대상 아동들이 급증한 것이다. 때문에 올 초 예산이 지난해 말 추정치보다 10억 원 늘더니 추경예산에서 또 3억 원 불어 모든 가용재원을 보육료 하나에 다 쏟아 부어야 하는 지경이다.

하지만 수성구청은 보육료에서 본 '혜택'을 다른 사업에 돌리고 있다. 주민들이 골고루 이용할 수 있는 체육, 문화, 복지 시설에 대한 예산을 다른 구보다 많이 책정할 수 있게 된 것.

북구청 관계자는 "지자체마다 수요가 다른데 보육료 예산의 구비 분담은 국비의 25%로 동일하다."며 "중앙 복지 정책 수요가 많으면 많을수록, 구비 분담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다른 개발 사업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구 7개 구청의 인구 1인당 보육료 부담(구비 기준)은 북구가 1만1천522원으로 가장 많고 ▷서구 1만원, ▷남구 9천444원, ▷동구 9천394원, ▷수성구 7천619원, ▷달서구 6천780원, ▷중구 6천원 순. 북구, 서구, 남구, 동구의 보육료 부담이 재정자립도가 더 높은 수성구, 달서구를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구청 예산 담당자들은 "기초자치단체 보육료 부담률을 아예 없애거나 복지 수요와 재정자립도에 따라 부담률을 달리해야 한다."고 정부 보육료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떠밀리는 작은 복지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복지 정책에 지자체 복지 재정이 쏠리다보니 지방정부 단위의 복지사업은 해마다 좌초하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낮을수록 복지 사업의 위기는 더 커진다. 대구 7개 구청 가운데 재정구조가 가장 열악한 남구청은 3년 전 '장애우 목욕차량 봉사 사업'을 포기했다. 차량까지 제공하겠다는 후원자가 나타났지만 중앙 복지정책에 맞춘 재정조차 겨우 마련한 마당에 매년 구청에서 지원해야 하는 돈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임병헌 남구청장은 "정부가 재정자립도에 상관없이 모든 국가 정책에 획일적 지방 분담률을 적용하는 바람에 구 단위 작은 복지 사업은 외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구청은 올 하반기 청소년 공부방 사업을 새롭게 추진하지만 국비 50%, 구비 50%의 분담률 규정에 묶여 또 다시 사업 좌초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임 청장은 지난 5.31 지방선거 당시 "복지예산은 물론 다른 국비보조사업에 대해서도 재정 자립도에 따라 차등 분담률을 적용해야 한다."며 "대구시와 정부에 이같은 내용을 건의해 열악한 남구 재정을 개선하겠다. "고 공약했을 정도.

다른 구청 예산 담당자는 "수성구는 지난해 아파트 개발에 따른 소방도로 용도 폐지 수입금만 200억 원이 넘는다"며 "10억 원도 채 안되는 타 지자체들이 모든 국가 사업에서 똑같은 분담률을 적용받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씁쓸해 했다.

지방정부 관계자들은 "유럽 국가들이 지방재정을 압박하는 퍼주기식 복지 대신 일자리 창출을 통해 지방발전을 동시에 꾀하는 생산적 복지로 돌아선데 주목해야 한다."며 "지방의 복지 수요와 재정자립도에 대한 전면 실사부터 벌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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