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계급론'의 저자 톨스타인 베블런은 값비싸고 아름다운 물건을 소유하려는 것은 물건의 본래적 용도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부(富)를 증명해주기 때문이라고 갈파했다. 이른바 과시적 소비이다.
이는 물건이 낭비적이고 표면적 용도에 잘 맞지 않을수록 더 효용적이라고 생각되는 인식의 뒤바뀜 현상을 불러온다. 예를 들어 기계로 만든 값싼 알루미늄 수저가 비싼 수제 은수저보다 원래의 목적상 훨씬 더 효용적일 수 있지만 사람들이 후자에 열광하는 것은 수제 은수저가 명예로운 과시적 낭비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금이나 보석도 본래 아름다운 물건이지만 이것이 소유자에게 주는 효능은 본래의 아름다움 보다는 그것을 소유하고 사용하는데서 오는 명예에 있다. 그래서 베블런은 "값비싸고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물건의 사용과 감상에서 오는 고도의 만족감은 대체로 미(美)를 구실삼은 고가(高價)에 대한 만족감"이라고 단언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그에 의하면 현대인은 사물 자체의 유용성 때문에 소비하지 않는다. 오늘날 세탁기, 냉장고, 아파트 등의 상품은 개별적인 사물로서 존재하지 않고 그것을 생산한 기업의 이미지와 광고, 상표 등과 결합돼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의 지위와 위세를 나타내는 일종의 기호(記號)로 작동한다. 따라서 현대인은 상품 본래적 가치가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차별화시키는 기호가치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이미 유행어가 되어버린 쌍용자동차의 광고카피 '대한민국 1%'는 기호가치로서의 상품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 대표적 사례이다.
최근 서울 강남의 부유층과 일부 연예인을 상대로 원가 8만~20만 원짜리 시계를 수천만 원에 판 사기사건은 바로 과시적 소비와 차별화의 욕구를 절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이른바 '허영마케팅'이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다이애나 비, 모나코 그레이스 켈리 왕비 등만이 산 제품"이라는 선전에 주저없이 가짜에 거액을 지불했다니, '물건은 본래적 용도보다는 부의 과시를 위해 소유된다.'는 베블런의 혜안이 새삼 놀랍다.
이 사건은 일부이긴 하지만 우리사회의 부유층들이 부는 소유했으나 심미안은 저열(低劣)하다는 사실을 드러내주면서 그들의 부러워했던 서민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순기능(?)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부자들에 대한 반감을 확산시켜 '잘사는 20%와 못사는 80%의 대한민국'이라는 집권세력의 '분할지배'(divide and rule) 전략이 먹혀들고 있는 토양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제 우리나라 부유층도 명예로운 부자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정경훈 경제부차장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