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辱).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말이지만 음지에 묻힌 언어요, '쓰레기 말'이었다. 그러나 바야흐로 탈권위 시대, 막말하는 시대를 맞으면서 욕은 양지로 나오고 있다. 대중의 소비욕망과 기호가 속살 깊이 스며든 대중문화 속에서 욕은 권위의 붕괴와 교양에 대한 조롱을 통해 통렬한 카타르시스를 경험케 한다.
적절한 때에 제대로 사용된 욕 한 마디는 행동 잘못한 사람들의 급소를 찌르는 철침이 되기도 하고, 의리와 세상 이치를 일깨워주는 강펀치가 되기도 한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쌍 소리가 아니라, 정의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한 일갈인 것이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속에 들어찬 응어리를 뱉어내는 용도로도 욕은 쓰인다. "이 년의 뒤웅박 팔자."라는 악다구니에는 슬픔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경우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실감이나 '맛'을 전달하기 위해 욕설이 애용된다.
작가 조정래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전라도 벌교 지역을 중심으로 한 민중들의 삶을 사실감 있게 묘사하는 과정에서 토속적인 각종 욕설들을 사용했다. 이 때 욕은 듣기 거북한 쌍소리가 아니라 지역 특유의 토속적인 언어의 질감이 진하게 배어 있어 오히려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전라도 욕이 가져다주는 토속미와 친근함은 영화 '황산벌'에서도 차용됐다.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욕설이 넘쳐난다. 너무 자극적인 욕설로 관객의 시선을 끌려는 잔재주가 아닐까 하고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영화들도 없지 않지만, 적절한 욕설의 삽입은 영화를 한층 재미있고 실감나게 만든다.
장선우 감독의 '나쁜영화', 김영빈 감독의 '나에게 오라', 김성수 감독의 '비트'에는 240~250여 차례의 욕이 나온다는 조사도 있다. 방송의 경우 욕에 대한 금기가 많이 풀렸지만 아직 성기를 연상시키는 욕설은 금지된다. 명절 특집 영화로 단골 편성되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욕설 대사의 대부분이 편집되거나 그 부분의 소리가 묵음으로 처리돼 영화 흐름에 지장을 줄 정도다.
욕은 '관계의 해방구'이기도 하다. 욕을 함부로 해도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으로 받아들일 정도라면 욕은 둘 사이의 친밀감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일 수도 있다. '주고 받는 욕 속에 싹트는 우정'인 셈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흉폭한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예닐곱살의 유치원생의 입에서도 그 뜻조차 알지 못하는 상스러운 말이 쉽사리 튀어나온다. 욕 불감증 시대다. 미디어에서도 욕이 사용되는 사례가 급증했다. 굴레를 벗어 마구잡이식이다. 언어는 늘 변하는 것이지만, 인터넷을 중심으로 새로 생겨난 욕과 변형된 욕으로 인해 세대간 언어 단절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이는 바르지 못한 언어 습관에서 문제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가 욕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부조리와 불합리를 안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절로 욕이 나오게끔 만드는 상황들이 속출하면서 감정 표현의 수단인 언어가 더욱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다. (2006년 8월 10일자 라이프매일)
한윤조 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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