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 기자의 니 하오! 중국] (33.끝)충전경제

입력 2006-08-08 10:34:02

갑자기 정전이다. 우리 집만 정전이 될 리가 없어 두꺼비집을 확인했지만 전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한여름 복더위에 에어컨과 선풍기는 물론 '불 없는' 하룻밤을 보내고서야 전기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기를 다 쓰기 전 충전시켜두지 않으면 정전사태는 피할 수 없다.

중국에서는 이처럼 전기를 충전해서 사용한다. 전기카드를 갖고 은행에 가서 필요한 만큼 사서 계량기에 꽂으면 충전되는 방식이다. 버스카드를 충전하는 것과 같다. 1도수(度數)에 5마오(毛) 정도니까 한국에 비해서는 전기요금이 싼 편이다.

이는 계획경제 시절의 배급제를 연상케 한다. 전기뿐만 아니라 가스와 유선전화, 휴대전화 및 인터넷까지 선불이다. 돈을 낸 만큼 쓰게 돼 과소비는 없다. 계획경제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닌 셈이다. 하긴 '충전경제'는 30년 이상 지속됐던 중국식 계획경제의 유산이자 신용사회를 조기에 정착시키지 못한 중국식 시장경제가 채택한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 여행자들은 물론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조차 가끔씩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고층 빌딩과 고급 쇼핑센터, 밤마다 화려한 불빛을 발하는 가라오케와 고급 음식점. 부자들은 두꺼운 지갑을 열어 소비에 열을 올리고, 중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발붐과 부동산 열풍은 '돈냄새'를 풍기며 전세계 투자자들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개방된 연해도시뿐만 아니다. 내륙의 농민들도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로 스며든다. 막노동하는 '농민공' 생활을 하면서도 그들은 오늘 돈을 벌고 있어 표정이 밝다. 13억 전인민이 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돈이 위력을 발휘하는 곳이 오늘의 중국 사회다.

'공산당(共産黨)'은 CCTV의 7시뉴스에서나 종종 볼 수 있을 뿐 찾기가 어렵다. 관공서나 공공기관은 '인민을 위한 서비스'(爲人民服務)라는 구호를 대문짝만하게 내걸고 변신을 꾀하고 있다. 중국인들조차 공산당 얘기를 싫어한단다. 100위안짜리 인민폐에 그려진 마오쩌뚱(毛澤東) 주석의 초상화는 재물신으로 승격, '라오바이싱'(老百姓·인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가난한 공산당원'은 없다. 한 때 자본가로 지탄받던 기업가들이 당당하게 공산당에 입당한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세상이다. 문혁(文革) 때 봉건사상과 자본주의 사상의 상징으로 몰리면서 배척됐던 쿵즈(孔子)와 개혁개방 이후 뒷전으로 밀렸던 마르크스도 경제성장과 더불어 부활했다.

개혁개방(開革開放)의 기치 아래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버리고 시장경제의 길로 매진한 지 27년. 중국 경제는 자본주의 원조보다 더 자본주의의 냄새를 풍긴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며 자신들을 자본주의로 정의하는 것을 싫어한다. 중국 경제는 앞으로도 시장경제를 지향할 것이다. 올해부터 시작된 11.5계획(11차5개년계획)의 주요 목표 중 하나도 시장경제 활성화다.

시장경제와 계획경제.19세기와 20세기, 21세기가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사회가 중국이다. 중국을 읽는 키워드는 다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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