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영기업의 천국 저장성] ⑤원저우의 샤오고우 경제

입력 2006-08-07 08:20:56

한 때 중국산 일회용 라이터가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국내 라이터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한 적이 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더 이상 일회용 저가 라이터 생산대국이 아니다. 저장성(浙江省) 원저우(溫州)에서 생산되는 '금속제 라이터'는 연간 8억 개. 세계시장의 75%를 점유하고 있다.

◆원저우 최대 라이터 기업 '다후'

원저우 최대 라이터 기업 '다후'(大虎). 다후의 조우다후(周大虎) 회장은 1992년 부인의 퇴직금 5천 위안으로 라이터 공장을 창업했다. '다후'라는 회사 이름은 조우 회장의 이름을 땄다. 초창기에는 주로 타이완을 통해 주문을 받았고 OEM이었다.

당시 원저우의 라이터 기업은 3천500여 개나 됐다. 신생 업체로서 기존 업체들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았다. 조우 회장은 일정한 품질을 갖춘 자체 브랜드만이 살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호랑이표'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그는 직원을 채용할 때도 "국제적인 브랜드를 창조해 세계 제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랑이'가 새겨진 다후 라이터는 원저우의 라이터 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했고 외국 바이어들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격한 품질을 강조하다보니 공인들이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는 일도 종종 벌어졌다고 한다. 하루 70~80개의 라이터를 생산해야 제대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공인들로서는 품질에 신경쓰느라 기껏해야 50~60개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공장이 달가울 리 없었다.

2006년 현재 원저우의 라이터 기업은 500여 개. 3천여 개 기업이 14년여만에 사라졌다. '다후'는 원저우 최대 라이터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라이터에서는 세계 최고인 '지포(Zippo)'와 경쟁하는 일만 남아 있다. 다후의 디자인연구소에는 30명의 연구원이 있다. 다후의 동나(童娜) 주임은 "오일을 사용하는 지포라이터와 달리 우리는 가스라이터를 생산하고 있어 차별화된 경쟁력이 있다."면서 "뿐만 아니라 다후 라이터는 디자인이 깜찍하고 다양하다."고 말했다.

성공한 원저우 기업들은 중국 전역에 부동산개발 붐을 일으키면서 돈벌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다후는 "우리는 라이터 전문이다. 다른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민영기업의 천국, 원저우

라이터와 안경과 구두.

이 세 가지는 개혁개방 초기부터 원저우 경제를 일으킨 바탕이었다. 원저우 상인들은 적은 자본으로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소홀히 한 작은 물건에서부터 사업의 기회를 찾아냈다.

중국 동부 연안의 항구도시, 원저우는 저장성의 최남단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남송시기부터 원저우는 무역항으로 아시아 각국의 상선들이 왕래한 개방도시였다. 그러나 사람은 많고 경작할 땅은 적은데다 태풍 등 자연재해가 빈번해 오랫동안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원저우가 21세기 들어 중국 민영기업의 모델도시로 탈바꿈했다.

당연히 개혁개방 후 민영기업 1호는 원저우에서 나왔다. 그래선지 개혁개방을 연 덩샤오핑(鄧小平)은 "우리는 원저우의 모험가(기업가)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며 원저우 상인들을 극찬한 바 있다.

무엇이 원저우를 민영기업의 천국으로 만들었는가? 원저우는 개혁개방을 준비했다. 개혁개방 이전 이미 원저우에는 자생적인 민영기업이 생겼다. 그런 점에서 원저우는 민영기업의 발원지인 셈이다.

원저우의 민영기업은 종업원 8명 미만인 소기업(개체호)이 24만여 개, 종업원 8명 이상인 민영기업이 13만여 개 등 총 37만여 개에 이른다. 원저우 전체 기업의 98.8%가 이들 민영기업이다.

원저우 경제의 또 다른 특징은 외자기업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선지 원저우의 기업환경은 철저하게 배타적이다.

'원저우 한국상회'의 최혁준 사무국장은 "원저우 사람들은 외국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원저우에서 성공한 외자기업은 물론 외지기업은 드물다."고 말했다.

원저우 상인은 '중국의 유대인'으로도 불린다. 이들은 대규모 사업을 벌이는 것보다 유대인처럼 소규모, 저비용으로 다양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선지 원저우 경제는 부품경제이자 소상품경제다. '샤오고우(小狗)경제'라고도 불린다. 단추 라이터, 전압기, 플라스틱 제품, 안경, 구두 등 일용 잡화품이 원저우 경제를 대표한다.

◆중국 명품 구두 캉나이, 아오캉

원저우는 중국산 명품 구두 제조기지다. 구두수선공 출신의 정슈캉(鄭秀康) 회장의 캉나이(康奈) 그룹과 왕전타오(王振滔) 회장이 창업한 아오캉(奧康)은 원저우의 양대 제화기업이다. 이밖에 지얼다(吉爾達) 등도 원저우산 유명 제화기업이다.

원저우시 번화가인 우마제(五馬街). 제화도시답게 이곳에만 캉나이 매장 5곳, 아오캉 매장이 두 곳이나 있다. 중국 최대의 신발도시라서 신발 정도는 값싸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곧바로 어긋났다. 매장에서는 남성용 구두 한 켤레를 사려면 300위안(한화 3만6천 원)이 넘었다. 싸구려 구두가 아니었다. 캉나이 등 원저우산 구두는 '명품'으로 대접받고 있었다. 캉나이 구두 매장은 전국에 2천500여 개나 된다.

개혁개방 초기 한 때 '질나쁜 가짜 상품의 대명사'로 취급받던 원저우산 구두가 중국 최고로 거듭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원저우 신발업자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구두 선진국인 이탈리아의 제화기법을 도입, 품질을 높였고 이를 통해 빠른 속도로 시장을 점유한 것이다.

제화업은 원저우의 최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제화업은 원저우의 전통산업이다. 명나라때부터 원저우산 가죽신은 황제에게 바치는 진상품 중의 하나였다. 현재 원저우에는 4천여 개의 제화업체가 있고 30여만 명이 제화업에 종사하고 있다.

안경산업 역시 원저우의 대표산업 중 하나다.

원저우의 안경산업은 1970년대 시작됐다. 안경부품제조업으로부터 안경제조, 도금, 렌즈 등 안경과 관련된 업체가 1천여 개. 안경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18만여 명. 2005년 원저우의 안경생산액은 65억 위안에 이르고 전중국 안경생산의 35%를 차지한다. 원저우 100대 기업 가운데 12개가 안경기업이다.

원저우는 2003년 1월 중국 정부로부터 '중국의 안경제조기지'로 지정받았다. 한 때 안경이 대구의 특화산업이었던 것처럼 안경은 원저우의 특화산업으로 대접받고 있다. 원저우는 안경 중에서도 선글라스 분야에서는 세계 최대 제조기지다. 그러나 아직까지 독자적인 브랜드를 갖추지는 못하고 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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