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특히 일본이나 싱가포르 같은 데에서 길을 걸어본 이라면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좋게 말해 한 마리 연어가 되어 세찬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기분, 정확히 말해서 많게는 수십 명의 行人(행인)이 형성한 흐름을 혼자 깨뜨리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비단 길을 가면서만 부닥치는 것은 아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계단을 오르내릴 때, 지하철이나 백화점을 오갈 때…. 요컨대 두 명 이상의 사람이 걷고 있으면 분명하게 만들어지는 흐름인데, 바로 한쪽 방향 통행이다.
일본이나 싱가포르 사람들은-물론 더 많은 나라에서 좌측이든, 우측이든 한쪽 방향 통행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거의 대부분 통행방향을 지킨다. 길에 줄을 쳐둔 것도, 선을 그어둔 것도 아닌데 그렇다.
우리나라도 '사람은 左側通行(좌측통행), 차는 右側通行(우측통행)'이 원칙이라고 한다. 도로교통법에 그렇게 규정돼 있단다.
그렇지만 당장 횡단보도를 건널라치면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가라는 화살표가 표시돼 있다. 벽이 있는 복도나 계단을 걸을 때에는 유사시에 오른손으로 벽에 기대기 위해 자연스레 우측통행을 하게 된다는 지적도 있다. 회전문도 오른쪽으로 돌므로 문을 나선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우측통행을 하게 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서는 어떤가? 한줄서기 운동 이후 에스컬레이터에서 급한 사람 먼저 가라고 한쪽에 붙어 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주행로-추월로 개념이 원용돼서인지 대개 오른쪽에 선다, 즉 우측통행이다.
서울에서는 지하철 1호선은 좌측통행인 반면 2호선 이하 노선들은 우측통행이라서 헛갈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7·26 서울 성북을 재보선에서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가 당선된 뒤 정치권에 정계개편 논의가 분분하다. 최대 話頭(화두)인 정계개편의 방향은 누구를 더 '싫어하는가'에 달린 것 같다.
요컨대 노무현 대통령 반대에 무게가 실린다면 '反노非한'이고,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한나라당 집권을 더 받아들일 수 없다면 '非노反한'이라는 것이다. 또 반노비한이라면 다소 보수적 성향이 짙고-다시 말하면 약간 우편향 좌측이고-, 비노반한이라면 반노비한보다는 더 왼쪽에 자리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폭우와 미사일과 김병준에 시달리며 불볕더위 밑에서 먹고살기 고달픈 국민들에게는 딱 핀잔듣기 좋은 '고담준론'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1년 반 후의 대통령 선거를 위해 지금 눈앞의 국민들 고통을 모르쇠해서는 안되니 정계개편 논의는 당분간 유보하자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말씀이 더 가슴에 와 닿기는 한다. 그러나 열려버린 판도라의 상자처럼 정계개편 논의는 좋든 싫든 터져나와 버렸다.-상자에 홀로 남겨진 '希望(희망)'처럼 '民生(민생)'만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반노비한, 비노반한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인들은 국민이야 어찌 되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좌우 논쟁을 벌일 준비가 돼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국민들은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이념 말다툼에 신물이 나 있다. 국민들을 잘 살고 편하게 하려는 논쟁이기보다는 權力(권력)을 계속 누리느냐? 다시 내 걸로 만드느냐? 하는 싸움일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통행방향이나 좌우 중 어느 하나로 정했으면 싶다. "100년 이상 내려온 전통이다. 바꾸면 더 혼란스럽다."가 맞을까? "미국과 유럽은 사람, 차 모두 우측통행이고 일본과 영국은 모두 좌측통행이다. 우리에게는 우측통행이 더 안전하고 합리적이다."가 옳을까?
여름 휴가철이다. 혹시 해외로 여행 나가시는 분들이라면 그 곳 나라 사람들은 길을 어떻게 나다니는지 한번 눈여겨볼 만하겠다. 그래서 우측통행이든 좌측통행이든 열심히 논의해서-지금으로선 사람이나 차량이나 모두 우측통행하자는 의견이 많은 것 같다-가을쯤에는 통행방향 정도는 하나로 정해서 지켜봤으면 싶다.
이상훈 정치부장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