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출문제
한 민족이나 한 사회 혹은 사회 집단이 공통으로 겪은 역사적 경험은 그것을 직접 체험한 개개인의 생애를 넘어 집단적으로 보존, 기억되는데 이를 집단 기억이라고 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의 대량 학살에 대한 유대인의 기억은 집단 기억의 좋은 사례입니다. 그렇다면 한 민족이나 한 사회의 집단 기억은 그 구성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양자의 관계를 설명해 보시오. (서울대학교 기출문제)
▨ 질문에 답하기
▶ 구성원을 통합시키는 집단 기억
한 민족이나 한 사회의 집단 기억은 그 구성원에게 먼저 집단에 대한 자부심을 불러일으켜 그 집단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동기를 부여하는 기능을 한다.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구성원'은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전에 이미 한 개체로서의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이란 한 개체를 형성하는 무수한 정체성 중에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사회를 떠나 살 수 없는 개체는 살아가는 동안 늘 어느 집단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하고,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부분적인 정체성'이 그의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이와 같이 집단이란 개인의 자유를 늘 제한하는 그 무엇이다. 영원하지는 않아도 개인의 생애보다 훨씬 긴 수명을 가진다. 또한 개체가 속해 있는 학교 집단들은 대부분 교육 제도가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개체보다 오래 존속할 가능성이 크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해도 개체보다 사태를 수습하고 이겨 낼 수 있는 시스템이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한 개체는 늘 집단과의 불화를 겪으면서도 집단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 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집단 기억'이다.
이처럼 집단 기억이란 한 개체가 그 집단에 대해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데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보자.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1950년 6.25 전쟁의 기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전쟁의 아픔을 딛고 경제 개발에 성공해 50년 전과는 전혀 다른 국가를 건설한 자부심 또한 지니고 있다. 이러한 기억을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의 기억이나 경제 개발 당시의 기억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할아버지나 할머니, 아버지나 어머니의 기억을 통해 당시의 기억들을 물려받고 있으며, 공식적인 역사 학습 시간인 학교의 국사 수업을 통해 이러한 과거를 배우고 있다.
▶ 다른 기억의 억압
하지만 집단 기억에 구성원을 통합하는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집단 기억은 그 집단과 다른 기억을 지니고 있는 구성원의 의식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보자. 1948년에 발생한 이른바 제주도 4.3 사건은 일부 주동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무고한 제주도민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는 당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발생한 사건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정책적으로 국가의 '합법적인 선거를 방해한 반란이나 폭도들의 만행, 폭동'으로 규정돼 왔다. 제주도민들에게 이 집단 기억은 거부하고 싶지만 국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기억이었다. 이러한 소외의 기억은 제주도민들의 심성을 왜곡시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해병대에 자원입대하는 흐름을 낳기도 했다. 결국, 군사 정권이 끝난 후 제주도 4.3 사건은 '국가에 의한 과잉 진압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던 사건'이란 집단 기억으로 다시 복원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집단 기억은 구성원들에게 자부심과 소속감을 불러일으키는 통합의 기능도 수행하지만 일부 구성원들의 기억을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집단 기억은 조금씩 수정되고 변화한다. 그리고 그 집단 기억을 바꾸는 이들은 바로 집단 기억에 의해 주조된다고만 생각되는 구성원들, 즉 개체이다.
▨ 예시답안
교수 : 질문에 답해 보게.
학생 : 저는 집단 기억이 그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구성원들이 집단에 대한 자부심과 소속감을 더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인간은 기억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이는 집단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즉, 집단도 자기만의 고유한 기억을 만들어 나가면서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집단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특히 저는 축구 경기를 보면서 그러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국가 대표 간의 대항 경기에는 반드시 해당 국가의 국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국가를 연주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 때 대표 선수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가 항상 궁금했습니다. 아마 대개는 자신이 국가를 대표하고 있으며, 팀의 승리가 곧 국가의 승리요 국민의 승리가 될 것이라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집단 기억은 과거 국가 대표들의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이자, 기억하고 싶지 않은 패배의 역사일 것입니다. 그러한 집단 기억을 되새기며, 국가 대표의 승리의 역사를 위해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할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교수 : 그렇게 보면 집단 기억이 구성원들을 통합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나?
학생 : 그렇다고 집단 기억이 전적으로 긍정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집단 기억이 구성원들에게 맹목적인 충성심을 유발하여 타 집단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군인들은 자랑스러운 일본의 팽창의 역사에 기여하기 위해, 즉 대동아 공영권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자기 몸을 던지며 집단을 위했지만,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건 단지 침략 행위였을 뿐입니다.
또한 집단 기억은 그 집단과 다른 기억을 지닌 일부 구성원들을 배제하는 역할도 합니다. 제주도 4·3 사건이 국가 폭력에 의한 제주도민들의 희생 사건으로 규정되기 전까지 제주도민들은 폭도나 반란군, 혹은 그의 자식이라는 오명을 지니며 살아갔습니다. 이때의 집단 기억은 그 집단과 다른 기억을 지닌 구성원들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교수 : 잘 말했네, 그렇다면 반대로 구성원들이 집단 기억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말해 보게.
학생 : 저는 구성원들이 집단 기억을 단순히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집단 기억이란 것이 언어로 표현되는 이상, 언어를 사용하는 구성원들은 집단 기억을 만들고 변형시키고 그것을 후대에 전해 주는 적극적인 주체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벌어질 당시 광주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광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론에서 보도한 대로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들의 선동으로 일어난 사태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광주 사람들은 자신들이 당한 일을 적극적으로 알려 나갔습니다. 즉, 기억을 위한 싸움을 벌인 것입니다. 결국 10여 년이 지나 광주 사태는 민주화 운동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피해를 당한 시민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집단 기억을 뒤바꾼 사례입니다.
(송원학원 논술·면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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