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극단의 원고를 맡으며 두류공원을 두어달 동안 내 집처럼 다녔다. 잠깐 출연하게 된 딸아이까지 데리고 다니니 종알종알 어찌나 많은 질문을 하는 바람에 답하기에도 정신없었다.
"엄마 여긴 무슨 동이야?" "응 두류동이야 두류공원이니까" "치, 그럼 앞산공원 밑에는 앞산동이야?" "그건 아니지만 달성공원은 달성동 맞을껄?"
농담섞인 질문과 답을 하면서 깔깔거리는 딸아이가 차에서 내리자 마자 코를 막는다. "엄마 막걸리 냄새나!"
우리 모녀의 뺨을 스쳐가는 바람에는 적당히 익은 막걸리 쉰내가 코끝을 찡그리게 했다.
"저기 저 노래소리는 뭐야?"
단비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환갑은 족히 넘었을법한 어르신들이 거나하게 술에 취해 녹음기 장단에 가무를 즐기고 계셨다.
순간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비가 말을 한다
"엄마 저러면 안되지, 사람들 많은 공원에서 저렇게 시끄럽게 놀면 안되지?" "그래 단비는 저러면 안돼"
단호하게 말하고는 총총 걸음으로 가던길을 갔다
공연이 시작된 이틀 뒤, 무료하게 집에 계시던 친정엄마를 모시고 다시 공원을 찾았다.
"엄마, 공연할려면 다섯시간이나 남았는데 어쩔꺼유? "
"아이고 야야 여 참 잘돼있네! 내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서 준비나 해라. 내가 아도 아니고 찾아가꾸마!"
그리고 그날 저녁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길, 나의 친정어머니는 낯선 또하나의 경험담을 나에게 풀어 놓았다. 내가 눈살을 찌푸리던 그 노인들의 춤사위와 술냄새에 어머니는 동참을 하였던 것이다.
"야야, 참 별천지더라! 내가 같이 보낸 손영감이라고 있는데 세상에···. 마누라가 중풍이 걸리가 누워있다더라, 자식들 다 시집장가 보내고 마누라 병간호 하는데 이렇게 나와 잠깐 쉬고 들어가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안카나. 거기 오는 할매 할배들도 다 짝지가 있다카드라. 술한잔 묵고 안주 하나 만들어와서 하루 놀다가면 그래도 세월가는거 서럽지는 안타 카드라"
"그래서? 엄마도 거기서 흔들고 놀았어?" "아이고 야야! 내가 거서 흔들고 놀만큼 숫기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우째 살았는지 노는것도 못배아가 가보이 서럽드라. 그 뭐라캤노 뮤지컬인가 그거 노래소리 나와가지고 시끄럽다고 자리 옮기는 통에 그래서 내 들어왔다 아이가"
단비가 말을 받았다.
"할머니! 엄마가 거기서 시끄럽게 놀면 안된다 그랬어"
나는 옆에 앉은 딸 아이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나고 친정어머니는 감자를 삶아서는 손노인을 만나러 가셨다. 친정어머니를 두류공원으로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 나에게는 만감이 교차했다.
어린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며 노는 두류공원, 젊은 연인들은 데이트를 즐기며 드라이브 코스로 혹은 산책로로 이용하는 그 공원 한 켠에선 나의 어머니이자 내 자식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리네 눈치를 보며 아까운 시간들을 그렇게 보내고 계셨던 것이다.
막걸리 냄새가 바람에 묻어나면 또 어떤가! 그들의 가락이 나에게 소음이었듯이, 어쩌면 예술단의 공연이 그들에게는 소음이었을 수도 있는데···. 소통하지 못하는것은 서로에게 소음이듯이.
엄마는 감자를 두봉지로 나눠 담으셨다.
"엄마 와 두군데로 담노?"
"중풍걸리가 누버있다 안카드나. 누워있으면 뭐든 먹고 싶은것도 많을낀데 좀 갖다 주라 칼라고"
무뚝뚝하지만 정많은 경상도 할머니 우리 어머니를 기다리는 손노인의 하루가 참 길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번진다. 세월은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빨라진다. 내 딸 단비의 하루와 나의 하루 그리고 내 어머니의 하루는 같은 이십사시간이지만 서로에게 느껴지는 속도는 나이가 먹을수록 빨라질것이다.
도심지의 공원이란것은 아마도 세월을 멈추게 하는 휴식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네 젊은것들은 늘 그 공원이 우리들 것인냥 우리들의 잣대로 이용했지만, 삶의 마지막 휴식이라 생각하고 낮은 그늘에서 젊은 날의 태양을 그리워하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 이제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이소연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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