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들인 고가도로 '무용지물'
지난 25일 퇴근시간대 대구 달서구 상인동 상인네거리. 남북방향으로 고가도로가 설치된 이 네거리는 남북방향 조차 고가도로로 올라서는 차보다 고가도로 옆길로 빠진 뒤 신호를 받으려 서 있는 차가 더 많았다.
희한한 것은 남북방향으로 난 고가도로가 있음에도 상인네거리는 동서남북 4개방향 모두 신호가 작동중이었다. 결국 남북방향의 고가도로는 주 도로가 아닌 보조도로가 된 셈. 고가도로로 올라서는 차가 적다 보니, 고가도로 옆으로 난 길엔 신호대기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 곳 주민 김주형(48) 씨는 "고가도로를 두고도 네거리 모든 방향에 직진·좌회전·유턴을 허용하니 네거리는 막힐 수 밖에 없다."며 "수십억 원이 들었을 고가도로인데 무용지물이 돼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차는 더 막힌다."며 대구시 교통행정을 꼬집었다.
대구시가 '무조건 만들고 보자.'는 식의 교통구조물 설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차가 조금만 밀린다 싶으면 고가차도, 지하차도, 터널 등 교통구조물을 만들어 해결하려는 근시안적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대구시는 기존 교통구조물의 '실패'에도 불구, 주상복합건물·대형할인점 등 교통수요가 많은 시설물을 교차로 부근에 무분별하게 허가한 뒤, "길이 막힌다."며 고가도로·지하차도를 또 만들어 기존도로에 덧붙이는 행위를 거듭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가도로·지하차도 등의 교통 구조물이 되레 교통량을 집중시켜 교통지옥을 만드는 역효과를 낳고 인근 지역 슬럼화도 가속화한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같은 시각, 취재진은 대구 북구 복현오거리 일대도 다녔다. 하지만 이 일대 역시 남북으로 고가도로가 뚫려 있음에도 불구, 교통지옥이었다. 유통단지 앞 삼거리에서부터 복현오거리 쪽으로 500m도 못 미치는 구간통과에 30분이 걸렸다.
복현오거리 역시 고가도로가 설치됐지만 교차로 5개 방향 모두 신호가 주어지고 있었다. 고가도로가 뚫린 신암동~산격동 동서방향 교통수요가 많을 것이라는 예측으로 고가도로를 만들었으나 경북대북문~대구공항간을 오가는 차가 더 많았다.
고가도로 바로 앞 산격 대우아파트 주민 최호영(33) 씨는 "차 보다 걸어 가는 것이 더 빠르다."며 "잘못 만들어진 고가도로를 걷어내지 않는 한 이 일대 교통지옥 현상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구시는 두산오거리 부근에 대규모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자 고가도로를 지으려 했다 강한 주민들 반발로 백지화했고, 최근에 황금네거리 지하차도도 일대 주민들이 반대하는데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 영남대 김타열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하차도를 뚫고, 고가도로를 만들면 자연스레 교통이 몰리게 마련이어서 교통혼잡만 더 가중시키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서울 경우 최근 청계천 복원 이후 낡고 오래된 고가도로 철거바람이 불고 있으며 도심 지하차도 건설에도 신중을 기하고 있다. '고가도로나 지하차도 건설 등 '하드웨어' 중심 정책에서 탈피, 교통신호체계 개선, 주정차단속 강화, 시내버스 이용유도 등 교통소통률을 높이기 위한 '소프트웨어' 연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
대구대 도시지역계획학과 홍경구 교수는 "1990년대부터 선진국에서는 도심에 교통수요가 많은 건물을 제한하고, 고가도로나 지하차도도 없애고 보행로로 대신하는 등 자동차에 빼앗긴 도심을 사람에게 돌려주자는 '신도시주의(New Urbanism)'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대구는 교통량 많은 도심에 대형할인점 등 교통수요가 큰 시설물을 무차별 허가한 뒤 교통문제가 대두되자 지하차도나 고가도로로 막으려는 안이한 정책을 거듭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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