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하게 이 도시를 떠나는 청년을 배웅하고 구보 씨는 역사(驛舍)를 나섰다. 밖은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밤늦게 무거운 가방을 들고 청년은 이곳보다 몇 배는 더 큰 그 도시에 가 닿을 것이다.
전국이 장마에 들어 있으므로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을 그 도시.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보겠어요. 뭐, 아는 이도 없으니 부끄러울 것도 없겠죠. 청년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젖은 눈으로 고향 하늘을 한 번 쳐다보더니 훌쩍 열차에 올랐다. 그리곤 더 이상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구보 씨가 사는 먼 나라의 이곳은 지방 대도시다. 한때 국가 제3의 도시로 뉴스 말미 기상예보에도 아주 당연하게 세 번째 차례를 차지하곤 했던, 참으로 특출했지만 요절하고만 한 시인으로부터 '나라의 수장이 세 명이나 배출되고 시인들이 수없이 우글거려 참으로 이상하고 신비한 도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던 인구 254만명의 아주 큰 도시다.
구보 씨도 종종 술자리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dear dirty Dublin'을 흉내내어 이렇게 읊조리곤 했다. 힘겹고 때론 이렇게 우울하게 만들지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나의 도시여.
대합실에서 청년은 친구들과 함께 결코 이곳을 뜨지 말자고, 아비뇽과 에딘버러, 밀라노가 어디 그 나라의 중심도시였던가, 우리가 사는 이 도시를 먼 나라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화예술 중심도시로 만들어보자고 서로 결의를 다지곤 했다며 웅얼대듯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실업의 시간을 보내던 그들이 어렵게 갹출(醵出)하여 연 작은 문화이벤트 회사가 결국 문을 닫게 되었을 때도 이토록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러다가 결국 현실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는 걸 모두 깨달은 거죠.
대학원으로 공무원 시험으로 방향을 돌린 친구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어요. 문제는 저처럼 부양해야할 가족들이 생기는 경우였죠.
여전히 비 내리는 다음날 구보 씨는 논술반 아이들과 이 도시의 지난 역사와 오늘에 대해 토론했다. 구세대들과 달리 아이들은 도시에 대해 해박한 지식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도시에 여러분들은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고향을 어떤 식으로 사랑하시겠습니까. 구보 씨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손을 번쩍 번쩍 드는 아이들이 청년의 어린 시절 모습 같이 느껴져 마음이 자꾸 아려왔다.
이봐, 힘 내! 잘 될 거야. 어제는 어깨라도 두드리며 위로했어야 했는데.... 원고지를 나눠 준 구보씨는 아이들에게 오늘의 글쓰기 제목을 천천히 불러준다. 자, 여러분이 우리 도시를 다스리는 시장이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박미영(시인.대구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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