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영기업의 천국 저장성] ③최대패션도시 닝보

입력 2006-07-24 08:20:13

야거얼(雅戈爾) 뤄멍(羅夢) 샨샨(杉杉) 등 중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3대 남성복 브랜드가 모두 닝보에서 나온다. 닝보산(寧波産) 양복과 와이셔츠 T셔츠 등 남성복은 전중국 생산량의 10% 이상을 점유한다. '닝보국제복장축제'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축제 중 하나다.

개혁개방(改革開放) 직후인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닝보에는 변변한 의류기업 하나 없었다. 당시 닝보의 관할시인 펑화(奉化)와 츠시(慈溪)시를 중심으로 소규모 봉제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20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닝보가 '섬유패션도시'로 우뚝 설 수 있었을까?

야거얼과 뤄멍 역시 영세 봉제공장으로 출발했다. 야거얼은 79년 2만 위안을 자본금으로, 뤄멍은 84년 3만 위안으로 시작했다. 야거얼은 올해 중국 제 7위의 민영브랜드(브랜드가치 44억 위안)라는 영예를 차지했다. 의류브랜드로는 최고 순위다.

닝보의 패션산업의 빠른 성장은 "닝보가 중국 현대복장 개척의 선구자라는 역사적 배경과 이에 대한 닝보인들의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7천년 전 벼농사 유적지인 허무두(河姆渡)에서는 물레와 바늘 등 방직 도구도 함께 출토됐다. 도제와 석제물레는 물론 골제 바늘 등이 대량 발굴되면서 닝보에서는 이 때부터 방직업이 주요산업이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19세기 말 닝보 출신 재단사를 가리키는 '홍방(紅幇) '이 등장하면서 닝보는 중국 복장의 본고장으로 자리잡게 된다. '야거얼'의 종레이밍(鐘雷鳴) 주임은 "홍방(紅幇) 재단사들이 야거얼의 수석 재단사들로 기술을 지도하고 있다."며 야거얼이 홍방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닝보 홍방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양복'을 재단하고 최초의 양복점을 상하이에 여는가 하면 최초의 복장학교도 개설하고 '인민복'을 디자인한 중국 현대복장의 선구자로 기록된다.

닝보가 97년 국제복장축제를 시작한 것은 이같은 역사적 배경을 닝보의 산업발전과 접목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닝보시 대변인은 지난 5월 2006년 복장제계획을 발표하면서 "닝보 국제복장축제는 세계가 닝보의 의류산업의 역사를 이해하고 닝보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복장축제는 오는 10월 21일부터 24일까지 열린다. 이탈리아패션을 주제로 열리는 올해 축제에서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패션도시, 특히 대구지역의 패션업체들도 초청을 받았다.

2004년까지 집계된 닝보의 복장기업은 1천800여 개. 의류와 직물제품의 수출액만 41억 달러. 닝보전체 수출액의 30%를 넘었다. 야거얼과 뤄멍 샨샨 이쉬(一休) 등은 닝보뿐 아니라 전 중국에서 민영기업의 표본으로 인정받고 있다.

◆야거얼과 뤄멍

야거얼 본사는 닝보 홍방의 고향인 닝보시 인셴(땅이름 은+縣)에 자리잡고 있다. 야거얼은 2005년 1천만 벌의 와이셔츠와 양복 200만 벌, 기타 의복 2천만 벌 등을 생산, 중국복장협회로부터 최대 복장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의류판매만으로 41억7천100만 위안의 매출을 올렸다. 야거얼은 최근 중국의 부동산붐과 더불어 부동산개발사업으로도 진출, 작은 성공을 거뒀다. 최근 2~3년 동안의 중국 부동산열기는 사실 닝보와 원저우 등 저장출신 상방(商幇)에 의해 부추겨지기도 했다. 닝보시내 고급주택단지의 아파트에서 '야거얼' 이름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닝보의 복장전문기업들도 21세기 들어 부동산과 IT·레저산업 등으로 진출하면서 대기업집단화하고 있다. 야거얼 본관 1층로비에 걸린 '국제브랜드를 만들어 백년기업으로 장수하자'는 구호가 눈길을 끌었다. 리루청(李如成) 야거얼 회장이 "앞에는 늑대가 버티고 있고 뒤에서는 호랑이가 쫓아오고 있다."면서 강조한 '백년기업론'이다.

야거얼의 역사는 중국 개혁개방의 역사와 마찬가지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직후인 79년 리 회장은 2만 위안을 은행에서 대출받아 봉제공장을 차렸다. 말이 공장이지 재봉틀 몇 대 빌린 지하작업실이었다. 25년만에 야거얼은 51억 위안 자산을 가진 중국 최대의 복장기업신화를 썼다.

야거얼은 86년 '베이룬항'(北侖港)이라는 브랜드를 개발했고 89년 300만 장의 와이셔츠를 생산하면서 봉제공장규모에서 벗어났다. 지역색이 강한 '베이룬항'(닝보의 항구이름이다) 브랜드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리 회장은 90년 마카오와 합작, '야거얼'브랜드를 내놓았다. 98년 증시에 상장했고 2006년 현재 40여 계열사(2만여 명의 직원)를 거느린 최대 복장기업으로 성장, 중국 500대 기업 중 144위에 올랐다.

종 주임은 "야거얼은 면사개발에서부터 방직공장, 봉제공장까지 모든 공정을 계열화하면서 생산원가를 낮추고 전국 각지의 뛰어난 판매시스템이 뛰어나다."며 "기업문화를 통해 세계와 경쟁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는 해외시장에 약하다."면서"아직 해외브랜드가 없으므로 브랜드의 국제화가 우리의 당면과제"라고 말했다.

펑화시에 자리잡고 있는 '뤄멍'은 야거얼보다 5년 늦은 84년 향진기업으로 출발했다. 87년 '뤄멍(羅夢)' 브랜드를 시장에 내놓았고 96년 중국 최초로 OEM이 아닌 뤄멍 브랜드로 미국에 양복을 수출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총 600만 벌의 양복을 세계시장에 수출, 양복부문에서는 중국 최고기업으로 꼽힌다. 자산은 15억 위안.

뤄멍의 주쉬룽(朱緖龍) 총재보좌역은 "복장시장에서 제일 먼저 돈을 번 사람들이 닝보기업가들"이라며 "개혁개방 이후의 산업화시대에 빠른 기업성장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닝보의 기업가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급속한 성장에 놀라워하고 있다. 뤄멍 본사는 여전히 20여 년 전의 낡은 건물이었다. 주 보좌역은 "본사 이전공사를 하고 있다. 우리도 회사가 이렇게 빠른 시일안에 성장하게 될 지 예상하지 못했고 그래서 초기부터 넓은 부지를 확보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뤄멍의 미래에 대해 "중국 최고의 남성복 브랜드를 만들자는 총재의 구호에 따라 디자인 개발과 품질 개선 및 브랜드문화 창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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