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사교육비 문제는 교육의 일반수요자 뿐만 아니라 정책담당자에게도 좀처럼 벗기 어려운 멍에로 씌워져있다. 그 규모도 점점 더 커져만 간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03년에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학생당 월 평균 23만 8천만원의 사교육비가 지출되고 있고, 국가적 총액은 13조 6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학생의 납입금을 포함한 공교육비 총액의 3분의 1 수준을 훨씬 넘는다. 저소득층에게는 생계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부담이고, 그 부담 능력의 차이로 인한 교육의 불평등적 양극화는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사회적 문제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사정은 이대로 방치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의 인식인 것 같다.
그런데 지난 1996년에 한국이 OECD의 회원 국가로 가입하기 직전 전문가들로 구성된 평가단이 교육개혁방안을 중심으로 한국교육의 제도와 정책을 검토하던 중에 한국이 사교육 문제로 시달림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였다. 어느 날 어이없다고 할 만한 엉뚱한 소리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미국 출신의 한 평가위원이 사교육비의 부담능력의 차이로 인한 불평등 현상이 문제가 된다면 정부가 저소득층에 사교육비를 지원해 주면 될 것 아닌가라고 한 것이다. 그 말이 당시 우리의 귀에는 한국의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 학자의 "철없는 소리"로 들렸다. 물론 그 평가위원은 우리 사회에서 성행하는 사교육이 어떤 성격의 것이며, 어떤 폐해를 안고 있는가를 잘 모르고 있었을 줄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기로는 자녀의 교육을 위하여 돈을 쓴다는 것이 나쁠 것이 없고, 부담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의 부모들에게 그들의 자녀를 위하여 사교육비를 지원해 주는 것은 교육복지를 지향하는 국가로서는 당연히 할 만한 정책적 사업에 속한다고 여겼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시 생각해 보면, 가정이나 나라가 돈을 딴 곳에 쓸 것을 절약하여 교육을 위해 쓴다면 그만큼 그 가정이나 나라는 높은 "삶의 질"을 영위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에 이 말이 옳다면 사교육비는 불필요한 부담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나 이상적으로나 교육이 학교에서 완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의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인간계발의 영역이 무한히 남겨져 있고, 그런 한에서는 학교외의 교육, 사교육의 여지가 불가피하게 존재한다. 그것을 위하여 비용을 들이는 것은 근절되어야 하는 병폐가 아니라 절실한 사회적 필요에 속한다. 그러면 사교육비를 많이 쓰는 개인이나 국가는 그만큼 "좋은 삶"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돈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자식의 안위나 출세나 영달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국가의 발전과 인류의 복리를 위하여 그 자식이 지닌 잠재적 역량을 계발하는 데 자신의 능력이 자라는 만큼 비용을 부담할 의무를 느끼고 있을 경우의 이야기이다. 이런 경우에 그 의무를 자력으로 감당하지 못할 때 사회나 국가의 지원을 기대하거나 요청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씨름하고 있는 사교육의 문제는 반드시 부담능력의 차이로 인해서 초래되는 양극화의 문제만은 아니다. 공교육이나 사교육이나 간에 비용을 많이 쓸 수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적게 쓰게 해서 경제적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과 똑같이 쓰게 하는 것으로 사교육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사교육의 문제를 교육적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만 보는 것일 따름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오히려 사교육을 위한 비용이 무엇을 위하여 사용되고 있느냐이다. 그 비용이 학교의 교육력이 미치지 못하는 특별한 능력의 계발이나 보충적 부분에 쓰이고 있다면 교육적으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비용의 배분문제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그러나 근시안적 이기심에 매여 단순히 진학의 경쟁을 위한 "점수따기식"의 학습에 그 비용이 쓰이고 있다면, 그것으로서는 사교육이 결코 정당화될 수가 없다. 창의력, 자료해석력, 문제해결력 등의 고등정신능력의 계발과는 거리가 먼 단순암기, 기계적 계산, 족집게 정답 맞추기, 강제된 공부 등의 얄팍한 학습력을 기르기 위하여 그 많은 사교육비가 사용되고 있다면, 그러한 사교육비는 적게 쓰라 많이 쓰라고 하기 전에 교육적으로 해악이며 사회적으로 낭비에 불과하다.
부모의 이기심이나 기회주의적 계산에 의해서 젊은이들의 건전한 성장을 방해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원천적으로 파괴하는 일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것은 무지의 소행이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악에 속한다. 우리는 누가 사교육비를 많이 쓰고 누가 적게 쓰느냐를 두고 싸울 것이 아니라, 그 비용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느냐를 사회적으로 감시할 필요가 있고, 실제로 소요되는 적정한 비용을 어떻게 정의롭게 배분할 수 있는가를 두고 진지하게 숙의할 필요가 있다.
이돈희(민족사관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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