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이들 앞에 서고 싶어요"…말초성 T세포 림프종 앓는 권진희 씨

입력 2006-07-19 08:56:52

까까머리를 가릴 두건과 마스크.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권진희(23·남구 대명동) 씨가 외출할 때 반드시 챙기는 것들이다. 몸의 면역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봐도 어쩔 수 없다. 한창 외모에 민감할 나이지만 지금은 몸에서 병을 쫓아내는 것이 우선.

진희 씨는 '말초성 T세포 림프종'을 앓고 있다. 백혈구의 일종인 림프구 중 몸의 면역에 관여하는 T세포에 악성종양이 생기는 병. 발병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꾸준한 항암치료가 필요하다. 심하면 골수이식수술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진희 씨 몸에 이 병이 찾아든 것은 지난 해 7월. 대구교대 4학년이던 진희 씨는 교생실습을 막 마친 뒤 학교 도서관을 오가며 연말 있을 임용고시 공부에 열을 올리던 때였다. 평소 앓던 비염이 심해져 이비인후과를 찾았더니 의사는 큰 병원을 가길 권했고 조직검사 결과 몸 안에 악성종양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

진희 씨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종양과의 고통스런 싸움이 시작됐다.

"6개월 동안 항암치료 4번, 방사선치료는 25번이나 받았죠. 비교적 일찍 종양을 발견한 거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 덕분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고 그 때문에 그나마 잘 버텼던 것 같아요. 연말 제 몸에서 종양이 사라졌단 소식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몸에서 종양은 몰아냈지만 진희 씨 마음은 착잡했다. 병마와 싸우는 동안 친구들은 다들 초교 교사가 돼 있었던 것. 남들보다 1년 늦었다는 생각에다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까지 신경 쓰다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몸조리를 해야 했지만 하루 8시간 넘게 공부에 매달렸다. 그러다 다시 쓰러졌다.

"얼마 전부터 몸에 이상이 왔어요.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집에서 쉬어도 몸은 늘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죠. 코에는 종기 비슷한 것이 생기고요.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그것이 종양인 줄 알게 됐습니다. 몸 생각 안 하고 너무 욕심을 부렸던 걸까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겠다는 진희 씨의 꿈은 그렇게 무너졌다.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 수천만 원의 빚을 진 탓에 가정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부지런했던 아버지는 밤무대 악기연주, 고철수집, 막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주름진 가계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힘을 보탰지만 빚을 갚는 일만 해도 버거웠다.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진희 씨의 어릴 적 꿈은 신문기자나 어린이 동화작가가 되는 것. 집안 형편이 어려울수록 공부에 매달렸던 진희 씨는 대학 선택을 두고 기로에 섰다. 무엇보다 등록금과 졸업 후 취업 문제를 먼저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교대 진학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밝은 성격에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덕분에 학교 수업은 재미있었고 교생실습도 즐거웠다. '선생님'이라 부르며 달라붙는 아이들도 귀찮지 않았다. 하나같이 예뻐 보였다. 대구교대를 택하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병은 진희 씨의 꿈을 빼앗아갔다.

남은 항암치료만 해도 3번. 1천만 원이 훨씬 넘을 골수이식수술도 해야 한다. 현재 진희 씨네 사정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짐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돈 걱정을 말라며 진희 씨를 달랜다.

"어머니는 저더러 많이 웃으라면서 당신도 저 앞에선 항상 웃는 모습을 보이려 하세요. 하지만 그 마음을 왜 모르겠어요. 아픈 마음을 숨기고 억지로 웃으신다는 걸.... 어머니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필 날은 언제쯤일까요? 제가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만나게 될 날은 곧 올까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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