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실에 솟은 대는 충정공 혈적이라/ 우로를 불식하고 방 중에 푸른 뜻은/ 지금의 위국충심을 진각세계(하고자)….' 1905년 11월 30일, 일제에 항거하여 자결한 忠正公(충정공) 閔泳煥(민영환:1861~1905)의 충정을 그린 시조 '血竹歌(혈죽가)'는 모두 세 수짜리 연시조이다. 1906년 7월 21일 '사동우 大邱女史(대구여사)'라는 필명으로 당시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됐다.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에 처했는데도 고종은 사태를 바로잡을 힘도, 의지도 없었다. 이에 민 충정공은 "영환이 나라를 위해 잘하지 못해서 國勢(국세)와 民計(민계)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오직 한 번 죽음으로써 皇恩(황은)을 갚고 이천만 동포에게 사죄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혈죽가'에는 민 충정공이 자결한 방에서 피 묻은 대나무가 솟아나 뭇사람의 귀감이 됐으며, 그 절개는 정몽주보다도 높았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時調(시조) 시단은 이 '혈죽가'를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시조로 기리고 있다. 문헌상 나타난 현대시조로는 가장 앞선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의 시조는 가락을 붙여 부르는 게 목적이었으나 '혈죽가'는 처음부터 신문에 활자로 발표됐고, 읽히는 게 목적이었다는 데서도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는 '혈죽가' 발표 100주년을 맞아 오는 21일을 '시조의 날'로 제정, 선포식을 연다.
○…또 이날 '현대시조 100인 시조집' 합동 출판기념회도 가진다. 이어 오는 8월 11~13일엔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에서 1천여 명의 시조시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시조 축전'이 열린다. 국내외 대학교수들이 참가하는 '세계 민족시 포럼'을 비롯, 현대시조 30편에 곡을 붙인 노래들도 선보인다.
○…"시를 읽는 사람보다 시를 쓰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우스개 같은 말이 나올 만큼 시인도, 시집도 봇물 쏟아지듯 하는 요즘이다. 그러나 우리 고유의 전통시 시조는 여전히 홀대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서점에서도 시조집을 찾아보기 어렵고, 교과서에서도 시조는 밀쳐져 있다. 이에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는 지난 3월 '중등 교과서에 현대시조 확대 수록 즉각 시행하라'는 성명서를 청와대와 교육인적자원부 등 관계기관에 보내기도 했다. 100돌을 맞은 시조, 우리의 뜨거운 격려와 사랑이 필요하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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