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때이니 만큼 유럽 축구 이야기부터. 유럽 대부분의 도시는 프로 축구 클럽 팀이 존재한다. 축구 시즌이 되면 유럽의 클럽 팀은 도시를 순회하며 매주 게임을 한다. 축구 팬들은 클럽 팀을 열광적으로 응원 한다. 월드컵 기간 중 우리나라 축구 팬이 국가대표팀에 보낸 성원이 무색할 정도이다. 축구에 대한 관심과 흥분의 정도로만 보면 유럽의 도시에는 매주 월드컵이 열린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의 클럽 팀에는 선수가 자주 바뀐다. 축구 선수는 유리한 조건을 쫒아 팀을 옮겨 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클럽 팀은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한다. 클럽 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축구 선수가 아니라 축구 팬이다. 특정 클럽의 축구 팬은 대를 이어 상속되며 이러한 전통이 그대로 클럽 팀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유럽의 클럽 축구는 무국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모여 단일의 클럽 팀을 이룬다. 이 경우 국적은 오히려 짐이 된다. 유럽의 클럽 축구에 있어 국적은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유럽 축구에서 국적을 살려내는 이벤트가 있다면 그것은 유럽 선수권 대회와 월드컵이다. 클럽 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유럽 선수권 대회와 월드컵 경기를 위해 국적별로 해쳐 모이게 된다. 유럽선수권 대회는 유럽 국가만 참가하고 월드컵은 전 세계가 참가한다. 월드컵과 유럽선수권 대회는 매 4년 주기로 교차적으로 열린다. 유럽 축구팬의 입장에서 보면 국적을 앞세운 국가 대표팀 경기는 매 2년마다 돌아오는 것이다. 클럽 축구에서 상실된 국가의 의미가 유럽선수권 대회와 월드컵을 통해서 다시 소생하는 것이다.
유럽축구에서 발견되는 일상성과 계통성은 독특하고 또한 놀랍다. 유럽 축구에는 클럽 축구가 일상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국가 대항전은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하다. 일상적인 클럽 경기에도 열광하는 축구 팬들은 매 2년 마다 열리는 국적 축구 경기에도 열광한다. 클럽 축구와 국적 축구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유럽의 클럽 축구와 국적 축구의 절묘한 배치는 계통적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축구에서 클럽 축구와 국적 축구의 위계적 질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상호 평등한 지위를 누리며 공존한다.
우리나라 축구에는 유럽 축구에서 발견되는 넓이와 깊이가 없다. 우리나라 축구팬은 국가 대표팀 경기에만 열광한다. 4천278명, 지난 5일 울산에서 열린 국내 프로 축구 K-리그에 모인 관중 수이다. 한국 대표 축구팀이 월드컵에서 경기를 할 때 모인 어마어마한 인파와 비교하면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다.
우리나라 축구에서 K-리그는 연습 경기 정도로밖에 취급되지 않는다. 연습 경기는 족보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전통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일상적 유럽 축구에서 국적이 사라졌다고 한다면, 우리나라 축구는 일상성과 계통성 자체가 소멸되었다. 특이한 것은 유럽 축구의 경우 월드컵에서 국가를 희미한 기억 속에서 불러내는 이벤트로 기획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축구는 월드컵을 통해 과잉된 국가주의를 더욱 부추긴다는 점이다.
과잉된 국가주의로 인해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상 축구가 아니라 지역성이다. 국가주의가 횡횡할 때 지역성은 위축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주의의 기획은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이다. 지역성은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필요할 때만 그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과잉된 국가주의의 현실 속에서 지역의 일상성은 회복될 가능성이 있는가? 지역의 네트워크가 국가를 이루고 세계와 연결되는 계통성은 성립될 희망이 있는가? 잃어버린 지방의 족보를 다시 쓰는 일은 가능한 일인가?
나는 유럽 클럽 축구 팀에서 대구와 같은 지방 도시가 추구할 이상적 원형을 발견한다. 국적을 초월한 선수들로 클럽 팀을 구성하고도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 이것이 대구가 지향해야 할 세계주의의 모습이다. 그리고 지역 주민이 함께 지켜나가야 할 역사성의 현실적 구현 방식이다. 지방의 족보는 이러한 방향에서 다시 써야 한다.
김영철 계명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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