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오후 10시. 대구 남구 대명동 계명대학교. 50여 명의 젊은이가 모여 있었다.
친구 사이인지 묻는 기자에게 "컴퓨터 채팅을 통해 이날 처음 만난 사이"라고 소개했다. 처음 만나서인지 머쓱한 표정이던 이들은 얘기를 조금 나누더니 모두들 함께 미리 예약해 둔 호프집으로 가버렸다. 10여 명의 여성을 포함한 이들은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직업의 젊은이들.
혼자 놀기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모여 놀기 시작했다. 모일 수 있게 하는 매개체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채팅. 예전의 채팅이 1대 1, 또는 많아봐야 4, 5명이던 것과는 달리 최근 유형은 한꺼번에 수십 명이 참여하는 '떼채팅'이다. 채팅을 통해 모인 수십 명이 한자리에서 만나 모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힘든 학업에다 직장생활 등으로 외로움에 빠진 요즘 젊은이들이 '뭉치는 것'을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8시 인터넷 사이트 한 채팅방엔 수십 명의 네티즌들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입장인원은 무제한이었다.
2시간쯤 뒤 대구시내 한 호프집에선 채팅을 벌인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ON라인에서 처음 만난 뒤 계명대에서 다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온 것. 5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호프집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회사원 강모(22·여) 씨는 "평소 대화할 친구가 없다."며 "친구를 사귀기 위해 나왔다." 말했다.
또 다른 강모(25·학생) 씨는 "건전한 모임인 것 같다.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것이 너무 좋다."고 했다.
회사원 김상훈(29·대구 북구 복현동) 씨는 최근 퇴근이 빨라졌다. 김 씨 역시 채팅을 통한 '떼모임'을 시작한 때문.
회사일을 마치면 너무 피곤해 TV리모컨만 눌러댔던 김 씨. 하지만 김 씨는 많은 사람과 직접 얼굴을 맞대며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게 된 이후 생활의 활력소가 찾아왔다고 밝혔다.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들은 친족모임, 계, 동창회 등 오프라인 중심으로 인간관계 틀을 형성했지만 사회적·인간적 인프라가 없는 젊은층은 자신들이 익숙한 사이버 공간을 이용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백 교수는 또 "사이버 공간을 이용, 세상과 교류하는 통로를 찾은 젊은 세대들이 이제 여럿이 모이는 문화를 배우고, 그 의미를 알아가고 있으니 일면 다행스럽다."고 덧붙였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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