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 달그락 자판을 두들기다 그는 빗소리를 듣는다. '어두운 퇴근길에 깃들던 비의 숨결이 그예 내 사는 낡은 집 창에 이르렀나보다' 달그락 두들기다 타다닥 다시 지운다. 이러다간 너무 감상적인 시가 되고 말지. 혼자 중얼거린다.
그는 오래 시를 쓰지 못했다. 결코 배부르게 하지 않고 더 더욱 굶주리게만 하는 시에게 넌더리가 났던 그는 어느 코미디언처럼 이죽거리며 '시, 그 까이꺼' 내던져버렸던 것이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 후 몇 년을 그는 열심히 노동했다. 받은 임금으로 회식도 하고 집들이도 다녔다. 동료의 아들이 밀떡 같은 앞니를 드러내며 돌잡이하는 것을 보며 바로 이렇게 사는 게 시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가슴 저 밑바닥에서 피어나는 그 무엇은 외투의 검은 색보다 그를 더 어둡게 했다. '오래 헛배가 불렀다' 달그락 두들긴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 고개를 젓는다. 한 해 이십만 원 남짓 된다던 통계상의 원고료조차 내게 돌아온 해는 드물었잖아. 가끔 별 대수롭잖은 작품들로 대단한 상금을 주는 무슨 무슨 문학상을 받는 이들을 보며 얼마나 속앓이를 했던가.
흥, 차라리 발품문학상, 로비문학상 같은 나쁜 문학상이나 제정하시지. 한없이 비뚤어져 가는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었다. '함순처럼 굶주리며 썼지만, 시는 마치 시인에게 파리를 잡는 끈끈이 같은 구실을 했을 뿐' 달그락 두들긴다.
하지만 늘 미지근한 이마의 미열을 지닌 지병 같은, 검고 딱딱한 빵을 지우개인양 씹던, 타들어가는 담배가 손끝을 태우던, 황량하기 짝이 없는 광장에 선 듯 막막하기만 했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식탁에는 옛날과 달리 속까지 희고 부드러운 흰 빵이 놓여 있었지만 웬지 맛이 없었다. 뿌리째 흔들릴 것처럼 영혼은 자꾸 기침을 해댔다. 예전의 그 지독한 열병이었다. 시가 그리웠다.
'몇 년만에 석유 등잔에 심지를 돋우듯 조심스럽게 방치했던 컴퓨터에 전원을 먹였습니다. 히이잉, 굶주린 말처럼 모니터 저편에서 시가 다시 내게 달려왔습니다.' 달그락 달그락 그는 자판을 두들긴다. '앞으로 오랜 굶주림의 날들이 또 펼쳐질 듯 합니다. 하하, 언제 술이나 한 잔! -먼 나라에서 구보 올림'.
박미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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