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그라운드)경기의 무게에 짓눌린 아르헨티나

입력 2006-07-01 09:28:14

독일 축구는 영국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전통과 명예를 중요시 한다. 예전에는 30세 전에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어려웠다. 조직력과 체력, 스피드 거기다가 유럽에서는 드물게 '정신력'을 강조한다. '전차군단'의 강한 정신력은 1980-1990년대 독일축구가 전성기를 이루는 뿌리가 됐다.

그러나 현대 축구는 정신력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유로 2000과 2004의 혹독한 실패는 독일 축구의 기저를 변화시켰다. 지도자 경험이 전무한 젊은 클린스만 감독이 독일 대표팀을 맡게 된 이유도 변화에 대한 갈망의 산물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조직적이되 개방된 축구를 선호한다. 대표팀도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다. 그래서 불안한 요소가 많다. 단지 2006년 월드컵 주최국으로서의 유리한 물리적 환경이 불안한 요소를 보완해주고 있을 뿐이다. 아르헨티나와의 오늘 시합은 독일 축구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예선과 16강에서 보여주었던 범접하기 힘든 강한 '포스'는 개인 기량에서 한 단계 위인 아르헨티나 앞에선 힘겨워 보였다. 이겼지만 경기의 지배권을 처음으로 상대에게 넘겨주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문구가 떠오르는 경기였다. '승리의 신'은 오늘 독일편이었다.

남미에서 브라질이 본능에 충실한 축구를 구사하는 반면, 아르헨티나는 짧은 패스를 바탕으로 한 조직력의 축구를 선호한다. 선이 굵고 몸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격정적인 축구이다. 2002년 월드컵 예선탈락 이후, 이번 대회에 '한(恨)'을 품고 나왔다. 독일과의 시합 전까지 보여준 탁월한 역량과 승리에 대한 갈구는 모두를 전율케 했다. 그러나 오늘 아르헨티나는 독일이라는 산을 넘지 못하고 분루를 삼켰다. 상대가 홈팀인 독일이었기 때문에 위축된 경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혹자는 후반 1대 0으로 앞선 상태에서 너무 일찍 리켈메를 뺐고, 마지막 카드로 크루스를 투입해 메시, 사비올라 등의 유능한 공격자원을 써보지도 못한 것에 대해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에 대한 비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필자는 현대 축구의 특징을 '공격성의 거세'로 정의하고 싶다. 월드컵 축구가 회를 거듭할수록 게임당 득점이 저하되는 이유는 수비 시스템의 급속한 발전과 정착 때문이다. 큰 경기일수록 한 골의 값어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골을 넣어야 이기지만 지켜야 지지 않는다." 이 이율배반적인 상황에서 벤치는 지키는 것의 위대성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가장 공격적인 아르헨티나가 한 골을 지키기 위해 선수를 교체하고 '발악'하는 모습에서 월드컵의 무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바티스투타의 눈물과 함께 절망했던 아르헨티나의 축구는 오늘 또 다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4년 뒤를 기약해야 한다. 그들의 격정적인 축구를 다시 보기 위해 4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 전 세계 아르헨티나 축구팬들에게는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최강의 아르헨티나도 한 고비 넘는데 이렇게 힘이 드는데 월드컵에서 최후의 승리를 위해 감내해야 하는 시간은 도대체 어느 정도 일까? 축구팬들에게 한번 묻고 싶다.

전용배(부산 동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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