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입력 2006-06-27 08:16:37

얘야, 그저께는 6·25 전쟁이 일어난 지 꼭 쉰 여섯 해가 되는 날이로구나. 그런데 아직도 이 전쟁을 두고 전란이니, 동란이니 하며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는 것 같더구나. 미국과 소련 등 당시의 강대국이 관련되었고, 유엔까지 참전하였으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쟁이지, 작은 난리가 아니란다.

그리고 아직도 전쟁의 아픈 상처가 많이 남아있는데도 그 때의 일이 점점 잊혀지고 있는 것 또한 안타깝구나. 역사는 쉽게 잊어서는 안 된단다. 역사를 통해 우리의 앞길이 정해지기 때문이지.

몇 해 전, 어느 추운 겨울에 있었던 일이란다.

강원도 어느 깊은 산골짜기를 찾아온 두 사람의 발걸음이 있었지. 한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미국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젊은 한국 청년이었지.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 영어를 쓰고 있었단다.

두 사람은 깊은 눈에 푹푹 빠졌으나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갔지. 그리고는 마침내 한 무덤 앞에 섰단다.

"이곳이 바로 네 어머니가 묻힌 곳이란다."

나이 많은 미국인이 청년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지.

"중공군의 기습 때문에 우리 부대는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어. 날씨는 매우 추워 손발이 마구 얼어 터졌지. 해가 질 무렵이었는데 골짜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 고양이 소리 같기도 하였고……. 그래서 살펴보았더니 아기 울음 소리였어."

"그게 바로……."

"그래, 바로 네 울음 소리였어. 우리는 급히 눈을 치우고 너를 안아 올렸지. 그런데 더 놀란 것은 네 어머니가 옷을 모두 벗어 너에게 입히고는 얼어가고 있었다는 것이야. 우리는 서둘러 뜨거운 물을 먹인다 두꺼운 옷을 입힌다 하였지만 네 어머니는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어. 다행히 너는 어머니가 입혀준 옷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지만……."

나이 많은 미국인은 제대로 이야기를 잇지 못했어.

"네 어머니는 너를 업고 피난을 가던 중 깊은 골짜기에 갇히게 되자 너를 살리기 위해 옷을 모두 벗어 너에게 입힌 것이 분명하였어.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네 어머니를 언 땅에 묻을 수밖에 없었지."

"아,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어요?"

청년은 눈이 수북히 쌓인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어. 뜨거운 눈물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무릎아래 눈을 녹이기 시작했고…….

무덤을 끌어안고 엉엉 울던 청년은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지. 청년은 벗은 옷을 하나씩 무덤 위에 덮으며 또다시 울부짖었어.

"어머니, 덕분에 저는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머니 얼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 얼마나 불효자식입니까? 어머니!"

청년의 통곡 소리는 골짜기에 가득 퍼져나갔단다.

심후섭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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