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오미옥(48·여·대구 수성구 신매동) 씨는 24일 새벽 자녀들과 함께 대구 월드컵 경기장을 찾았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강 건너 불 보듯 하던 오 씨였다.
붉은색 티셔츠와 악마 뿔을 머리에 찬 채 열정적인 응원을 펼친 오 씨는 "거리응원에 나서 피를 토하듯'대~한민국'을 내쏟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서기 싫어하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며 "숨김없이 자신의 열정을 표현하는 것이 젊은 사람들만의 특권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붉은 물결과 함께 불어온 월드컵 바람에 대구·경북의 보수성이 옅어지고 있다.
보수성과 폐쇄성은 지역민들의 가슴에 새겨진'주홍글씨'. 그러나 4년 전의 월드컵 거리응원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나서기 싫어하는 경상도 특유의 습성도 점차 희석되고 있는 것.
국채보상운동과 2·28의거 등 권력과 손잡길 거부하며 기득권에 도전했던 대구·경북의 힘이 월드컵을 통해 다시 용솟음치고 있는 셈.
한국 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거리응원에 나선 시민들은 연인원 50만 명이 넘을 정도다. 이는 서울이나 부산 등 타 대도시에 못지않은 수치.
대구시 관계자는"거리응원전이 펼쳐진 범어네거리와 월드컵경기장, 두류야구장 등에 몰려든 이들의 절반 가까이가 가족을 동반한 30, 40대 부부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월드컵에는 거리로 나서는 중·장년 세대들이 두드러졌다. 남 앞에만 서면 괜히 쑥스러워하던 '경상도 사람'이 아니었다. 이들은 거리응원의 중심에 서서 열정과 용기를 내뿜었다.
김호철(27·대구 중구 동인동) 씨는"함께 열광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에 세대와 연령을 뛰어넘는 감동을 느꼈다."며 "나서기 싫어하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더 이상 아니라는 점을 느꼈다."고 했다.
거리응원이 펼쳐지던 곳곳에서는'남사스럽게 우예 그라노'라던 경상도 특유의 수줍음이 사라졌다.
범어네거리와 국채보상공원, 두류야구장은 물론 찜질방과 술집, 공원 곳곳에서도 '대~한민국' 함성을 이끄는 젊은 세대들이 눈에 띄었다.
응원이 사그라질 때면 누구라도 나서 신바람을 돋웠다. 나서길 꺼려하던 경상도 기질이 월드컵 열풍을 타고 있는 것.
4년 전과 이번 월드컵에서 드러난 국민 대통합을 이대로 흘려 보내지 말고 대구·경북의 새 활력으로 이어가자는 목소리도 높았다.
한국팀 경기 때마다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를 데리고 두류공원을 찾았다는 이청기(65·대구 달서구 두류동) 씨는 "아쉽지만 그래도 잘 싸웠다."며 "16강 좌절에 연연해하지 말고 대구·경북은 물론, 나라의 지도층과 국민이 월드컵 열기를 어떻게 일상생활에 승화시킬 것인지 고민하자."고 말했다.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 24일 새벽 대표팀을 응원한 박성일(42·회사원)·김유성(40) 씨 부부도 "4년 만에 다시 피어난 붉은 열정이 이대로 사그라져서는 안 된다."며 "생산 현장과 사무실에 휘몰아친 월드컵 신바람을 지역경제의 새 동력으로 이어가자."고 소망했다.
붉은악마 회원인 유승엽(24) 씨는"월드컵 때만 반짝하는 응원 문화가 아니다."라며 "지역민들의 뜨거운 가슴이 행동을 표현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국채보상공원에서 시민응원을 이끈 붉은 악마 이수진(20·대학생) 씨는 "월드컵 응원문화를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 갈등과 분열을 해결하는 사회 대통합의 기폭제로 삼자."고 제안했다.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월드컵을 통한 국민 대통합의 상징은 거리응원이다. 거리응원은 억지로 모이는 집회나 규탄대회와 달리 놀이와 공동체 의식이 결합된 자발적 시민잔치였고,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며 "이제는 일상의 삶 속에서도 공동체 의식을 구현하는 일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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