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세상의 빛을 담다

입력 2006-06-24 09:37:31

김규원 지음/ 시공아트 펴냄

산 페르민, 메르세, 카니발 덩케르크, 아비뇽, 에든버러…. 전 세계인들을 불러모으는 각국의 축제는 모두 나름의 특색(特色)을 갖고 있다. 다른 지역과 국가의 축제와의 차별이 해마다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다시 불러모을 수 있기 때문. 나름대로 색깔이 있는 이들 축제를 지은이는 실제로 색깔과 접목시켜 자신만의 축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원초적 본능이 손짓하는 스페인 축제는 '빨간색'을 담고 있다. '바스크의 소몰이 축제'에서 붉은 스카프를 매고, 황소의 심장에서 터져나오는 피칠갑에 흥분해 덩달아 광란하던 죽음의 현장은 바로 '빨간색의 향연' 그 자체다.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의 끔찍한 독재를 이겨내고 전통을 되살려 하늘 높이 인간탑을 쌓는 '바르셀로나 메르세 축제'의 빨간 색은 거대한 에너지를 담은 희망을 상징한다.

이에 반해 찬란한 크리스마스의 정경이 있는 '독일 뉘른베르크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평화와 사랑이 충만한 '황금색' 축제다. 한 해의 말미를 장식하는 행사에는 황금빛 소품들이 진열된 장터에서 글뤼바인을 마시며 한껏 금빛색을 만끽한다. 청어잡이 역사와 관련해 어부의 복장인 노란색 우비를 따라 온통 '노란색'이 가득한 프랑스의 '카니발 덩케르크'도 있다.

도시 전체가 회색 물감에 잠긴 듯한 '벨기에 뱅슈의 카니발'은 한눈에 튀는 '오렌지색'의 향연인 '오렌지 축제'가 벌어져 오렌지색과 하얀 눈이 독특한 정경을 연출한다. 이외에도 유럽 각국의 축제는 고유의 색을 자랑한다. 아비뇽의 녹색 바람과 왕의 정원에서 펼쳐지는 프랑스의 '아비뇽 축제'와 '쇼몽 쉬르 루아르 정원 축제'는 '초록색', 서늘한 북해의 영국의 '에든버러 축제'는 청록색 이미지가 있다.

차가움이 감도는 스위스의 '바젤 축제'는 라인강의 원류로서 차가운 빛의 대명사 '파란 색'의 이미지로 손색이 없다. 이탈리아의 '팔리오 축제'는 17개 동네의 난장판이 각각의 색을 한꺼번에 폭발시킨다.

사실 지은이가 축제의 흥분과 감흥을 전하기까지 수월한 것만은 아니었다. 호기심에 부랴부랴 찾은 지역에서 영어가 통하지 않아 필사적으로 고등학교 때 배운 독일어를 떠올리며 '더듬더듬' 다닐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탈리아의 '팔리오 축제'를 찾았을 땐 7월 더위 속에 빗줄기, 각종 향수 냄새, 체취, 소변 냄새 속에서 고생만 하다 축제가 취소돼 허탈해 하기도 했다.

책을 읽는 누구나 내일 당장에라도 달려가게끔 만들 만한 내용들이지만 주의해야겠다. 지은이가 밝혔듯 "축제를 다녀온 며칠 동안은 마약을 먹은 듯 환각 상태에 사로잡혀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축제의 후유증이 새로운 희망으로 변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유가 안 되고 직접 움직이는 게 귀찮다.' 하는 사람들은 각 이야기 끝에 지은이가 붙여놓은 '축제 공식 사이트'를 이용해봄직도 하다. 상업적 이익과 사이즈에만 정신이 팔려 각종 축제를 남발하는 지자체에서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다. 유서깊은 이들 축제가 어떻게 형성됐고 발전해왔는지, 그리고 세계인들의 가슴 속에 자연스럽게 파고들기 위해 어떻게 운영을 하고 있는지 등도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또 맺는 글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축제라고 불릴 만한 것들은 자기만의 색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축제가 아니라 케케묵은 행사밖에 되지 못한다."고. "남들을 따라 모방하거나 구색만 갖추고, 지자체 선거용으로 급조한 티가 역력한 축제는 마치 도로시의 무뇌 허수아비같이 눈을 씻고 찾아도 색을 찾을 길이 없다."고까지 한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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