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가슴의 언어

입력 2006-06-24 09:38:11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갑자기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려댄다. 군입대한 자녀를 둔 학부모로부터의 전화이다. "교수님 큰일났습니다. 손이 귀한 집안인데 하나뿐인 아들이 그 위험한 외국에 간다고 야단입니다."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교수님 이야기는 잘 듣는 것 같아서 연락하는 것이니 좀 설득해 달라는 내용이다. 내 속으로 낳아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게 자식인가. 자식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먼저 가족 상호 간의 가슴을 열고 진솔하게 서로를 인정하는 허심탄회한 대화가 가정에서부터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대화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머리보다 상대방의 가슴에 호소할 수 있는 가슴의 언어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틀린 것일까?

나의 의견과 일치하면 맞는 말이고, 나의 의견과 불일치하면 틀린 것인가. 우리는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제화 개방화 시대에 사람들의 의견과 요구는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현실에 부딪혀 보면 막상 같은 것은 없고 틀린 것만 존재하는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는 머리보다 가슴에 호소하는 진솔한 대화가 없기 때문이다. 대화를 할 때 나와 생각이 같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는 이분법적인 사고 또한 팽배해져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이 자기와 다른 의견을 내놓으면 목소리를 높이거나 딴청을 부리다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일도 허다하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말도 다른 이들에게는 진지한 대화나 아름다운 느낌으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대화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시작되는 것인데 모두 자기 말들만 앞세우니 의미 있는 대화는 없어지고 오히려 시각차만 더 벌어질 뿐이다.

경제적인 이익이나 본능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일수록 사람들은 더욱 고독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가슴을 열어 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사람이 주변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무턱대고 '아니요'라는 말만 거리낌없이 내뱉을 뿐이다.

사랑스런 가족끼리의 뜻 있는 만남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와 훈훈한 가슴의 언어를 나눌 수 있는 심지를 꺼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이다.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열고 진솔한 대화에 나서거나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그것을 지켜주고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이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현실은 내 아이가 전부라는 생각, 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아이는 잘 되어야 한다는 편협되고 경직된 사고를 가진 사람이 많아지면서 비롯됐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누구와 무슨 대화를 하든 자기주장만 내세울 것이다. 먼저 가정에서부터 더불어 살아가고 서로 배려하는 대화를 배우지 못했다면 사회에서 타인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대화를 할 때 다른 사람에게 '아니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으로 함부로 이야기하거나, 면전에서 상대방의 틀린 점과 단점만 꼬집어 가르치려고 하지는 않는지. 그리고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너무도 쉽게 내뱉으며 생활하고 있지는 않은지.

서로의 마음에 호소할 수 있는 '가슴의 언어'가 절실한 시대이다. 월드컵을 향한 우리들의 뜨겁고 감동적인 열정을 보라. 한목소리 한 뜻으로 감동의 몸짓과 언어가 표현되고 있지 않은가.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되는 이 언어와 몸짓을 일상생활로 승화시켜 보자. 그러면 우리 사회가 참으로 아름답고 따뜻해질 것이다.

김동광(대구예술대 한국미술컨텐츠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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