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문화재 관리·복원 '제멋대로'…대책 시급

입력 2006-06-22 09:48:06

울진에 산재한 문화재와 자료들이 허술한 관리와 보호로 도굴 또는 훼손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일부 문화재들은 최근 들어 당국이 엄청난 사업비를 들여 새롭게 단장을 하는 과정에서 원형을 무시, 임의대로 복원하는가 하면 보고서조차 제대로 작성치 않는 등 관리가 부실하다.

◆보수 재료조차 불명확=지난 13일 태백준령 130리 길인 봉화와 울진을 오가던 조선후기 등짐꾼 보부상들의 애환이 서린 '내성행상 불망비(乃性行商 不忘碑·경북도 문화재자료 310호)'녹제거에 참가했던 한 문화재 전문위원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두 개의 철비 중 하나는 화강암 좌대에 홈(24cm×5cm)을 파고 그 위에 세우면서 황토와 석회를 섞은 재료로 발라 쉽게 뽑히는 가 하면 다른 하나는 정체불명의 재료를 사용, 뽑는 데만 3시간이 걸렸기 때문.

이 비와 보호각은 울진군이 1999년 4월 도비 등 3천여만 원으로 문화재 관리·보수 전문업체에게 맡겨 단장한 것.

그런데 울진군은 문화재를 단장하면서 시공업체로부터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 지에 관한 사업내역서는 물론 보고서 조차 보관치 않는 등 문화재관리의 허술함을 드러냈다.

이 전문위원은 "해체·복원에 대비,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 지에 관한 기록은 기본"이라면서 "어떻게 준공처리 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화재도 새 것이 좋은가=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이 절경을 노래한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望洋亭)도 마찬가지.

군이 지난해 '경북북부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의 하나로 사업비 5억 3천여만 원을 들여 전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겹치마 팔작지붕을 한 단층목조 건물로 개축했지만 향토사학자들은 불만이다. 개축과정에서 기존 사료들을 활용하거나 향토사학자들의 조언을 구하지 않은 채 일반적인 정자로 지었기 때문.

사학자들에 따르면 기성면 망양동의 것을 1860년에 지금의 근남면 둔산동 왕피천 하구 야산으로 옮겨온 이 정자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주춧돌과 조선시대 유명 화가들의 작품도 상당수 있는 데 단장과정에서 활용을 하지 않았다는 것.

한 향토사학자는"겉모습은 웅장하지 않을 지 몰라도 문화재란 가급적이면 조상들의 손때가 묻은 사료를 바탕으로 원형에 가깝도록 복원하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치된 400년 전 비석=기성면 구산리 7번 국도 옆의 높이 187㎝, 폭 64㎝, 두께 18㎝의 교비(橋碑) 내역을 아는 이들은 행정당국의 향토사료 관리감독 소홀에 눈살을 찌푸린다.

조선 선조 36년(1603년) 울진 평해와 기성을 잇는 돌다리가설 기념으로 건립한 이 비는 1996년 7번 국도 선형 개량공사도중 시공업자의 부주의로 훼손, 네조각이 나면서 군과 문화원의 보수복원 지시에 따라 포항의 한 석물공장에 맡겨졌다.

이후 도로공사 업자와 석물공장이 부도가 나면서 비석도 분실됐다가 2001년 7월 포항 송도 길거리에 버려진 것을 경주문화원의 한 관계자가 주워 보관해오던 것을 뒤늦게 알고 반환받았다.

이 비는 당시 사회가 엄격한 신분구조였음에도 군수부터 향리와 성 조차 갖지 못했던 비천한 신분의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리 건립에 참여했던 100명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당시의 신분구조 및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 비석 주변 어디에도 비석이 갖고 있는 학술·사회·역사적인 가치를 알리는 것은 커녕 이 비에 대한 안내문 조차 없다.

주민 황호운(73) 씨는 "군정방향을 '관광울진'으로 표방하면서도 지역의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사료들을 보존해 관광자원화 하기는 커녕 제대로 관리조차 못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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