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대(對) 토고전때 한국 관중석의 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첫 골을 빼앗겨 모두가 한 숨을 내쉴때 TV화면에 비친 너댓살쯤의 한 꼬마, 곧 울음보라도 터질듯 시무룩한 표정이 안쓰러우면서도 슬몃 웃음 짓게 만들었다.
스위스와의 16강 고지가 꽤 가폴막져 보인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사기는 하늘의 해라도 딸 기세다. 지는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는 우리의 두둑한 배짱과 열정적인 응원이 지구촌 사람들에게 꽤나 신기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하긴 전국적으로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꼬박 밤을 새고 신새벽에 거리 응원을 하는 모습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지난 2002년 월드컵 이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뜨거운 열정이 우리 속에 있음을 알게 됐다. 분출할 곳을 찾지 못해 가라앉아 있던 그것이 4년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이번 대회에서도 멈출 길 없는 활화산의 용암처럼 뿜어져 나온다.
'열정'!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설레이게 하는 단어다. 그것은 '영원한 청춘'과 동의어 아닐는지. 사무엘 엘만도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고 했다. "그것은 장밋빛 뺨,앵두같은 입술,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한 의지,풍부한 상상력,불타는 열정을 말한다"고. 가슴 속에 열정을 품고 있다면 언제나 청춘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외모 지상주의에 따라 중·장년은 물론 노년층에까지 얼굴 리모델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첨단기법 미용술이라도 길어야 몇 년 후에는 결국 원위치다. 예쁘지고 젊어진다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을 할리우드 미녀 스타들을 보더라도 신통방통한 묘약은 없음을 알 수 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인간 노화를 억제시킬 획기적인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했다지만 죽음만큼이나 노화 역시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의 한계다.
그런 점에서 '열정'이야말로 노화 억제를 위한 정신적인 신약 아닐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열정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술할 필요도, 돈 들 일도,부작용도 전혀 없는 무공해 묘약. 이역만리 독일까지 찾아간 붉은 셔츠의 사람들, 이 땅 곳곳에서 지치지도 않고 '대~한민국'을 외치는, 못 말릴 사람들을 보며 새삼 '열정'이란 단어를 떠올려 본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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