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을 찾아서] 화첩기행

입력 2006-06-20 07:48:26

니시오카 교수님,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일본 남화(南畵)에서나 봄직한 한가함 속에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억압과 구속의 어두운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일본의 이 양면적 풍경에 소름이 돋도록 무서워졌습니다. 죽음과 살의의 광기와 하얀 회벽의 구조물 사이에서 나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역사의 완전범죄, 역사의 알리바이를 보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윤동주는 저곳에서 "어둠이 내몰리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 아침을 위해 스스로 제단의 제물이 되어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시) 것이라고 했습니다.

1995년 200명이 모여 살풀이춤과 함께 윤동주 50주기 추모 위령제가 열렸다는 형무소 뒷담을 걸으며 당신은 언젠가 이곳에 윤동주의 시비를 세우겠노라고 말했지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소름끼치도록 음산한 소리와 함께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왔지요. 형무소 하늘을 크고 둥글게 돌아 담 위에 앉은 그 까마귀와 대각선으로 지붕 한 쪽에 번쩍, 또 다른 눈이 있었습니다. 교묘하게 가려진 감시 카메라의 눈이었습니다.

까마귀의 눈과 감시 카메라의 눈은 사선으로 각도를 이루며 형무소 하늘에 돌연 팽팽한 긴장감을 일으켰습니다. 근처 묘원과 형무소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라는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까마귀는 어느새 세 마리, 네 마리로 불어나 있었습니다. 나는 비로소 그 공간에 떠도는 불길하고 사악한 어떤 기운을 느꼈습니다. 그것들은 원혼들처럼 일시에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교도소 당국이라도 저 검은 새들마저 희게 칠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니시오카 교수님,

윤동주는 죽었습니다. 그토록 열망하던 해방을 불과 여섯 달 남겨두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가랑잎 같은' 죽음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구구하게 윤동주의 시 세계와 고난의 짧은 생애를 다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가 다니던 대학, 그가 수감된 형무소 자리가 서울의 신촌과 서대문에 걸쳐 있어서 당신 역시 언제라도 그곳에 가볼 수 있겠지만 그 모든 현장들은 시대의 광기와 폭력 앞에 무참히 스러진 한 젊은 영혼에 대한 아픈 기억을 떠올려줄 뿐입니다. 피어나지도 못한 꽃처럼 윤동주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종점을 시점으로 바꾼다."(시 )고 했던 그의 예언처럼, 그는 죽었으되 민족의 가슴에 살아 있습니다. 일본인인 당신의 가슴에도. -'윤동주와 후쿠오카' 중에서

김병종(1953~)

한국화가·교수. 전북 남원 출생. 서울대 미대, 대학원 졸업. 미술기자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 수상. 현 서울대 미대 교수, 서울대 미술관장

예술가의 여행은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인가. 김병종 교수의 '화첩기행'에는 평범한 여행길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정취가 담겨 있다. 그가 걸었던 길과 같은 길을 걷는다고 해도 과연 이런 생각이 들까 싶다. 그런 시도보다는 차라리 그의 글과 그림과 함께 걷는 편이 정신을 살찌우는 데는 유익하리라. 현장에서 확인하는 글과 그림의 예술성은 더욱 실감날 것이다.

이 글은 지난해 출간된 '화첩기행' 3권에 실렸다. 3권은 '낯선 땅 낯선 하늘 아래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꽃을 피웠던 선배 예인들의 예술혼들에 대해 새삼 경이와 경념(敬念)을 함께 갖게 되었다.'는 작가의 해외 여행기다. 일본과 중국, 유럽, 러시아 등지의 낯선 골목과 모퉁이, 광장에서 만날 수 있는 한국의 예술혼들이 어떻게 피어났는지 읽어가다 보면 어느 새 작가와 같은 감정을 갖게 만든다. 별도로 정리된 전혜린, 김영, 이미륵, 윤이상, 최승희 등의 일대기와 작품, 관련 이야기들은 다른 책에서 얻기 힘든 덤이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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