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선입관

입력 2006-06-19 08:56:16

어머니가 안사돈이랑 미국에 가실 일이 생겼다. 나이 많은 두 어른이 미국에 있는 친척댁을 찾아가시는 거다. 몇 번 가본 곳이고 비행기를 타고 가면 친척이 공항에 마중을 나오기로 했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공항에서 배웅해 드렸다.

다음날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어 친척집에 전화를 해 보니 그 시간에 도착하는 비행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항공사로 수소문해보니 탄 비행기가 목적지인 워싱턴DC 옆의 돌로스 공항이 아니고 텍사스 달라스 공항으로 갔다는 것이다.

발권을 한 여행사 직원이 미국에 '돌로스' 공항이라고는 없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는 '달라스' 공항으로 발권해버린 것이다. 맙소사. 그 후 3일 동안 두 분은 행적이 묘연했다.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잠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던 사흘째 드디어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 간의 사연인 즉, 돌로스가 아니고 달라스 공항에 잘못 내린 사실을 알고, 버스를 타고 남부 텍사스에서 동부 워싱턴DC까지 이동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비행기 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칠순이 넘은 두 분이 손을 맞잡고 대륙횡단(?)을 나선 것이다. 버스를 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다 들르고 사막을 가로지르고 산맥을 넘고 강을 건너 50시간을 꼬박 달려 돌로스에 도착하신 것이다.

인간승리였다. 칠순이 넘은 노인네들이 어찌 대륙횡단을 생각하신건지. "의지할 사람도 없이 서로 손을 꼭 잡고 길을 나서니 사돈 간에 정도 생기고 좋더라"고 하셨지만, 얼마나 모진 고초를 겪었을까....

얼마 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때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 강진이 일어나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이다. 두 곳의 거리는 400Km 이상 떨어져 있다.

새벽에 일어난 일이라 저녁에야 뉴스를 보고 알았는데, 한국에 전화를 하니 난리가 나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친가 처가 식구들이 모두 울고불고 완전히 초상집이라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하니 나보고 오히려 이상하다고 했다.

"자카르타에 지진이 났다는데 별 일 없느냐"는 것이다. 처음 외신을 접한 사람이 인터넷에서 지도만 살펴봤어도 다른 곳임을 알 수 있었던 일을.... 생소한 '족자카르타'는 생각지도 못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자카르타'로 보도해버린 듯 했다.

한사람의 잘못된 선입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어려움에 처하게 만들었는가. 세상은 넓고 넓은데 자신의 상식과 지식으로만 판단하고 일을 처리하니 그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한 국가의 지도자나 한 지역의 수장들이 그렇다면 정말 큰 일이 아닌가.

박재우경북대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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