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 극장 마루 대표 추지숙 씨

입력 2006-06-16 07: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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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일단 일을 저질러 버렸죠."

소극장 '마루'(대구 남구 이천동)는 그렇게 탄생했다.

2004년, 세상이 밝아오는 신년의 기쁨에 들떠 있을 때 연극계에는 암울한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지역 연극의 버팀목 구실을 하던 소극장 '연인무대'가 문을 닫게 된다는 것이었다. 씨어터 '예전'과 함께 지역의 소극장 명맥을 유지하던 극장 하나가 문을 닫게된다는 상징성은 컸다. 단순히 극장이 하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극인들이 꿈을 펼치며 삶을 이어가던 창구가 또 하나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서른 다섯의 추지숙(37) 씨가 손을 들었다. 밤잠을 설쳐 고민도 해봤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운영을 해도 문을 닫는데 네까짓 게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됐다. 그러나 선배들의 손때가 묻은, 그리고 자신과 후배들이 서야할 무대가 뜯기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공연할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 추 씨는 곧바로 연인무대를 인수했고, 간판을 바꿔 그 자리에 소극장 '마루'를 개관했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열정보다 계산이 빨랐다면 감히 생각도 못해보는 일이었겠죠."

어쨌든 그녀는 남들에게 꺼내놓지 않고 그동안 가슴 속에서 고이 품던 꿈을 이뤘다. 스무살 때 우연히 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연극계에 뛰어들면서 마흔이 되기 전에는 소극장 하나를 가져봐야지 했던 꿈이다.

일을 저지른 뒤 2년이 훌쩍 지났다. 소극장 운영이라는 것이 떼돈 버는 일이 아니다보니 그동안 편했을 리 만무하다. 13일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의 극단을 이끌고 전라남도 고흥에서 원정 공연을 마치고 막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내일은 경북 상주로 갑니다. 돈 벌어야죠." 그녀가 내뱉는 짤막한 말에는 피곤함이나 어려움보다는 극장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묻어 나온다.

그렇게 버텨오는 사이, 지역에 소극장 두 개가 더 생겨났다. 당연히 배우들이 설 무대는 많아졌고 작품도 수시로 올려지고 있다. 관객들이 극장을 찾음으로써 연극계의 활기도 되살아나고 있다. 이제는 소극장 연극만 쫓아다니는 마니아들도 생겨났다.

이제는 그녀의 용기가 지역 연극 '부흥'의 가교역할을 했다는 기분 좋은 소리도 들려온다. 역시 '잘 한 일'이라고 자평하며 그녀는 더 좋은 작품을 올리는데 남은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연출이다. 연출가 추지숙은 또 다른 명함이다. 공연중인 '죽어도 좋아(25일까지)'도 자신이 직접 연출한 작품이다. 배우가 천직이라고 여겼던 그녀를 연출가로 변신시킨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첫 연출작 '왠만해서는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1)'는 연출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 호기심에 시작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연출은 도우미죠. 작품을 잘 해석하고, 배우들이 연기 잘할 수 있도록 돕고, 그래서 작품을 돋보이게 만드는···."

10여 편의 작품을 연출하면서 이제는 자기만의 색깔도 갖추어가고 있다. '객석의 관객이 연극의 장면 하나하나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질까' 그녀의 머리 속에는 늘 관객이 들어차 있다. 관객없이는 연극도 없다는 것이 그녀가 10여년간 연극바닥에서 터득한 생존법이다.

그것은 통했고 인터넷 카페 회원은 작품 한 편 한 편 끝날 때마다 늘어나 지금은 2천명 가까이 된다.

"연극 한편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관객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지는 않겠어요?"

그렇게 그녀는 연극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은 관객과 더 오랫동안 이어질 대화를 준비하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을 향해 달려간다. "연극은 단 한번도 실망을 준 적이 없었어요. 작품을 만들면서 겪는 어려움은 오히려 즐거움이죠. 다행스럽게 저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을 하고 있고 평생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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