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방 쌓을 돈 없으니 떠나라"…봉촌 주민들 '눈물'

입력 2006-06-14 07:17:29

대구 달성군 하빈면 봉촌리 주민들은 여름을 가장 싫어한다. 이 동네 사람들이 여름을 싫어하는 이유는 '물' 때문. 조금만 큰비가 내려도 마을 전체가 물바다가 된다. 지난 2003년 매섭게 울었던 태풍 '매미'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의 가슴에 큰 상처로 남아 있다.

"그땐 대단했지요. 비닐하우스와 밭은 물론 집도 물에 잠겼지요. 애지중지 키웠던 토마토와 고추는 전부 못 먹게 됐고, 미처 치우지 못했던 가재 도구들도 다 잃었어요." 이 마을 양모(49) 씨는 요즘도 창밖에 비가 내리면 놀란 가슴부터 쓸어내린다.

"올해는 물걱정 안 하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달성군에서 '마을이 자연재해 위험지구로 선정됐으니 모든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고 합니다. 이주비를 포함, 3천 만 원가량의 보상비로는 마땅히 갈 데도 없는데 '나가라'고 하는 것이 재해 대책입니까." 그는 긴 한숨만 내쉬었다.

장마시즌이 다가왔다. 그동안 이변으로만 여겨지던 시간당 수백 ㎜의 국지성 집중호우가 최근 들어 일상화됨에 따라 주민들의 탄식은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행정기관은 "돈이 없다."면서 주민에게 '집단이주 명령'까지 내리는 등 땜질식 처방만 하고 있다는 주민들의 볼멘 목소리가 높다.

달성군 구지면 오설리 주민들도 수십 년 살았던 정든 고향을 당장 떠나야 할 판. 이 마을이 자연재해 위험지구로 지정돼 안전지역으로 마을 전체가 이주해야 하기 때문.

이곳 방규영(70) 할아버지는 "군위 방씨 집성촌인 이곳에서 60여 년을 살았는데 막상 떠나려니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제방 하나만 쌓아 주면 될 텐데 무조건 떠나라고 하는 행정기관의 처사가 야속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30여 년을 봉천리에서 살았다는 정모(49·여) 씨는 "평소에는 소중했던 물이 여름철만 되면 야수로 돌변하지만 그래도 이곳은 몸과 마음을 묻어야 할 고향"이라며, "군청은 떠나라고 막무가내"라고 불평했다.

달성군 다사읍 죽곡2리 주민들도 여름이 야속하다. 대부분 주민이 식당을 운영하는 이 마을도 지대가 낮아 여름 큰비만 오면 낙동강물이 제집 드나들듯 해 수시로 침수되기 때문. 그래서 주민들은 살림집을 상가 2층에 마련하는 '생활의 지혜'를 터득할 정도다.

주민 김인태(52) 씨는 "해마다 태풍 온다는 기상예보가 있으면 1층 식당의 가구 등을 2층으로 '피난'시키느라 한바탕 곤욕을 치른다."며 "이제나 저제나 강둑을 쌓아줄까 기대해도 항상 기대에 그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달성군 측은 "낙동강과 금호강이 지나고 소하천만 123곳이 있는 등 대구시내에서 가장 많은 수해위험 지역이 산재해 제방축제, 배수 펌프장 설립 등에 나서지만 재정 문제로 뾰족한 수해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이 사실상 힘들다."고 털어놨다.

달성군 관계자도 "수해대책이 예방중심으로 바뀌었지만 재정부족 등으로 단계적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돈이 드는 제방축조보다 일부 지역은 '소개령' 정책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해 대구시가 '풍수해 저감종합계획'을 용역의뢰한 결과, 달성군 경우 자연재해 위험지구가 2곳, 재해 취약지는 모두 14곳으로 조사됐다. 달성군은 지난 2002년 태풍 루사 때 74가구 주택과 179ha의 농작물이 침수돼 모두 26억여 원의 피해를 냈고 2003년 태풍 매미로 주택 497동, 농경지 548ha가 침수돼 모두 567억여 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피해를 안았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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