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중국 난징(南京)을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도자기 축제 개막식에 참가했는데, 주최 측이 행사 분위기를 띄운다며 관중석에 동원한 악단이 떠오릅니다. 중국 악기, 시끄러운줄 익히 알았지만 이날 행사장의 타악기가 내는 굉음에는 혼이 다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꽹과리도 음량면에서는 세계 여느 악기 못지 않지만 중국 타악기와 비교하니 족탈불급이었습니다. 이날 행사장엔 한국 사물놀이패도 초청됐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들, 손님 배려엔 관심 없더군요. 사물놀이 연주를 시켜놓고, 저네들 굉음으로 완전히 깔아뭉개버리는 모습에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꽹과리 소리 역시 이방인들에게는 부담스럽지요. 경기장에서 울려퍼지는 꽹과리 소리는 외국인들의 신경을 거스르는 반면, 이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겐 힘을 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지난 4일 영국 에딘버러에서 열린 월드컵 최종 평가전에 앞서 가나 국가가 울려퍼졌을 당시 우리 응원단이 꽹과리를 쳐 비난을 샀지요. TV중계를 통해 들리는 꽹과리 소리에서 난징의 기억이 오버랩되더군요.
이날 TV를 통해 에딘버러 축구장을 보며 한국의 경기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붉은 물결과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응원소리, 축구장을 도배하다시피 두른 국내기업들의 광고판…. 방송3사 모두 이날 경기를 중계하더군요. 평가전이 아니라, 월드컵 본선이 열린 것 같았습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우리 국민들은 정말 행복했지요. 그러나 그때부터 우리국민들은 월드컵을 스포츠 이상의 무엇으로 인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가히 '월드컵 공화국'이 된 기분입니다. 기업들은 월드컵 마켓팅에 열을 올리고 있고 '붉은 악마'는 상혼에 오염됐다는 논란을 빚고 있으며, 언론은 국민보다 더 흥분하고 있습니다.
홈구장에서 열린 지난 2002년 대회를 제외하면, 한국은 역대 월드컵에서 아직 1승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독일 월드컵에서의 1승은 그 자체만으로 신기원이 되는 거지요. 그러나 진작부터 언론들은 8강'4강을 외쳐댑니다. 국민들의 기대심리도 한껏 높아졌지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선수들은 경기장이 아니라, 전쟁터에 들어가는 것 같은 부담감을 느낄 겁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축구를 진짜 사랑하는지도 의문입니다. 축구보다는 국가대표 선수단이 벌이는 '승리'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국내 축구 리그의 텅빈 관중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우리 국민들의 쏠림 현상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5.31 지방선거에서도 나타났지요. 관심의 과잉은 마구잡이식 비판의 또다른 얼굴입니다. 국가대표팀이 기대에 부응하면 이번 월드컵은 축제가 되겠지만, 16강 진출에 실패할 경우 국민들에겐 그만한 스트레스도 없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 얼마나 많은 비난과 마녀 사냥이 횡행할까요.
진정한 축제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데 있다고 봅니다. 이번 월드컵이 축제가 됐으면 합니다. 그러려면 열기부터 조금 식혀야겠지요?
김해용 라이프취재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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