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정녕 내 탓인 것을

입력 2006-06-13 07:55:49

와당탕쿵탕 자리로 뛰어들어가기도 하고, 고래고래 고함치기도 하고, 종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를 매만지며 거울 앞에 있기도 하고, 잠이 가득한 눈을 비비기도 하고….

내가 교실에 들어설 때 아이들이 연출하는 갖가지 풍경이다. 교실에 들어서는데 급하다는 표정으로 휴지를 들고 화장실로 뛰어가는 녀석도 있다. 이런 녀석들에게 50분 동안 수업에 열중하라고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실업계 고등학교. 옛 현인은 군자삼락 중에 가르치는 기쁨을 손꼽았는데 도대체 그 기쁨을 맛볼 수가 없다. 녀석들은 보통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를 우습게 본다. 1학년은 그대로 순진한 맛이 있어 수업에 참여하는 척 하지만, 학년이 높아질수록 보통 교과 담당 교사는 개밥에 도토리 신세다. 야속하리만큼 녀석들은 전문 교사들과 보통 교과 교사들을 차별했다.

별로 무장 없이 수업에 들어갔다가 참패를 맛보고 씁쓰레한 기분으로 교실 문을 나서는 내 마음 속엔 녀석들에 대한 불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중학교 내신 성적이 70% 이하였으니 별 수 있나. 5분을 집중하지 못 하니 뭘 하겠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녀석들 같으니라고.'

헌데 어느 날 특별 강연이 있었다. 녀석들은 강연이 끝나자 벌써 끝내면 어떻게 하느냐고 진심으로 아쉬워들 했다. 주의가 산만한 녀석도, 잠을 자는 녀석 또한 없었다. 숫제 몸부림을 치는 녀석들을 보며 강사는 더할 내용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흐뭇한 변명을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녀석들에게 저런 면이 있다니. 그러면서 또 불만이 터졌다.

"나도 일 년에 한 번만 수업해 봐. 저렇게 녀석들을 열광시킬 수가 있지."

내가 중얼거리자 옆에 앉아 계시던 선배 한 분이 낮은 음성으로, 그러나 한 마디 한 마디 새기듯이 말씀하셨다.

"김 선생, 우리는 전문가예요. 우리는 매일 매 시간 저렇게 아이들을 열광시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순간 쿵,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수많은 핑계를 대며 나는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녀석들의 탓으로 돌리며 전문가로서의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녀석들에게 눈높이를 맞추어 교재 연구를 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었던가. 녀석들이 흠뻑 젖어들 수 있는 학습 모형을 찾아내기 위해 몇날 며칠 눈이 충혈되도록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 녀석들의 진정한 안내자가 되기 위하여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교탁 앞에 섰던가를 자문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는요, 좀 쉬려고 우리 학교에 왔노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을 만나면 제일 속상해요. 우리 아이들이 부족하니까 더 열심히 가르쳐 주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어느 선생님의 야무진 소리도 귓전을 울렸다.

김옥주(포항전자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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