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코너] 대법관 임명 기준 논란

입력 2006-06-13 07:58:34

대법관 5명이 다음달 10일 교체된다. 전체 13명 가운데 5명이나 되는데다 이번 교체 후에는 2009년까지 인적 구성에 변화가 없기 때문에 각계의 추천과 대법원장 제청 과정에 관심이 높았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난 7일 5명의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면서 평가도 분분하다. 대법관 임명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서부터 대법원의 본질적 권능에 이르기까지 논란도 쏟아졌다.

▶과거에 대한 평가

과거 대법원의 대법관 인선 방식이나 역할에 대해서는 여론이 대체로 비판적이다. '사법부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다. 대법관이 국가권력이나 정치권력, 여론에 휘둘리고 추천기관의 눈치를 본다면 사법부 존재 이유는 없다. 역사에 죄 짓는 사법부, 오점을 남기는 대법관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이다.'(신문 사설)

신랄한 비난도 눈에 띈다. '우리 사법부는 권위주의적 통치가 시작되면서부터 국가가 관리하는 하나의 시험으로 선발되고 하나의 교재와 하나의 교육과정에 의해 훈육 받으며, 하나의 계층구조에 복종하며 하나의 법 도그마만을 전수받아 온 관료 법관들로 구성되어 왔다. 더구나 철저한 관료 조직으로 구성되면서 일종의 '법원 동일체'라 할 상명하복의 체제를 통해 규율되는 파행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법부는 과거 '회한과 오욕의 시대'를 강요당하거나 권력의 시녀임을 '자초'했을 뿐 아니라, 민주화와 개혁의 시대에조차도 국민으로부터 유리되게 된다.'(신문 칼럼)

▶코드 인사 논란

지난해 11월 대법관 3명이 교체될 때 한창 뜨거웠던 것이 이른바 '코드 인사' 논란이었다.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젊은 법관, 시민단체의 지지를 받는 법관을 임명하자 대통령의 뜻에 맞는 사람을 골라 쓴다며 공격이 쏟아졌다. '지난해 11월 대법관 3인 교체 인사가 코드 논란에 휩싸이면서 사법부 일각에서는 "재판 잘 하는 것보다 시민단체에 잘 보이는 게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자조했고 법복을 벗어 항의하는 법관도 줄을 이었다. 오죽하면 배기원 대법관이 퇴임하면서 "보수냐 진보냐의 잣대로 법관을 편가르기한다."고 개탄했을 것인가.'(신문 사설) 반면 관료적이고 보수 일색이던 대법원의 다양화를 시도했다는 측면에서 지지하는 주장도 적잖았다.

이번 대법관 교체에 대한 평가는 코드 인사에 대한 비난과 지지 논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대법관에 제청된 이들은 보수 4명, 중도 1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하면 차이가 난다. 코드 인사를 비판하던 쪽은 당연히 '안정성'에 무게를 둔 무난한 인사라고 칭찬한다. '제청된 개개인을 보면 그동안 우려했던 이념 편중의 코드인사는 제외돼 다행이다. 대법원이 다양한 가치를 조정하는 최고 법원의 역할을 보다 충실히 하려면 인적 구성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다양화에 못지않게 필요한 것은 권력으로부터 법원의 독립성을 지키는 일이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헌법적 가치를 수호해 줄 곳은 대법원이라는 사명감이 분명해야 한다.'(신문 사설)

그러나 반대쪽에서는 대법원이 진정한 정책 법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관료제의 구태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비판한다. '지난번 발탁에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왜 되풀이의 당위성이 없겠는가. 지난번 파격 인사가 일회적 정치선전이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거듭하여 그 시대적 정당성을 확고히 해야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조계에 반론들이 만만찮다. 서열을 무너뜨리는 대법관 임명은 다양화를 핑계 삼은 특정 정치세력의 대법원 거점화라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법관들이 상심했다고 하는가 하면, 심지어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도 한다. 그런 항변은 언뜻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사법부의 허리춤을 부여잡고 늘어지는 구태의 관료제에 대한 허망한 미련에 불과하다.'(신문 칼럼)

▶대법관 인선의 기준

이용훈 대법원장은 "대법관은 구체적인 분쟁을 법률적으로 해결할 전문적인 능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 그 과정에서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조화시킬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하며, 항상 시대정신에 깨어 있어야 하고,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지녀야 할 것"이라고 대법관 인선의 기준을 밝혔다. 치열하게 대립한 '정통법관론'과 '대법원 구성 다양화' 양자를 아우르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법관 개인의 성향을 보수나 중도, 진보로 가르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 그다지 의미가 없다. 이번 제청을 두고 재야와 학계 출신이 빠졌다거나 특정 고교와 대학에 편중됐다거나 하는 식의 비판도 곁가지다. 무엇보다 법관은 판결로 자신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양심에 의해 판결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대법관 인선이 코드 인사였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새만금 사건이나 천성산 터널공사 사건에서 보여준 성향은 그와 무관했다.

시민사회에서 법관이나 판결의 성향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판결이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기 이전에, 대법원의 재판과정이 보수와 진보를 아울러 다양하게 형성되는 법적 요구들을 폭넓게 수용하고 이를 올곧은 법 규율로 가공할 수 있는 대법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신문 칼럼)

현실적인 대법관 인선 기준으로 전문성의 문제는 빼놓을 수 없다. 대법관의 과중한 업무량을 감당하려면 법률 전문성과 폭넓은 재판 경험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법관 1명이 처리한 사건은 1천563건으로 월 평균 130건에 이른다. 전문성 부족으로 재판이 지연되거나 잘못된 판결이 한 건이라도 나온다면 그 피해는 국민의 몫이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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