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뚱보(?) 지하철 매표원

입력 2006-06-12 07:55:19

개인적인 일로 도쿄로 갑자기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일본에 몇 번 가보았지만 도쿄는 처음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란 늘 약간의 긴장감과 흥분을 더해준다. 주소하나 달랑들고 집을 나섰는데 잘 찾아 갈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싼 값에 일본 국적기를 타고 이륙한 후 한국승무원을 찾아보니 한 명도 없었다. 허탈감과 불안감이 겹친다. 하지만 일본승무원에게 갈 주소를 보여주니 자기도 모르는 곳을 다른 사람에게 몇 번이나 묻고선 내 옆에 무릎 꿇고 앉아 타고 갈 모노레일과 열차를 자세히 적어주었다.

밤 10시경 하네다공항에 도착해 시내로 들어갈 모노레일을 찾았다. 하지만 자동발매기 뿐이고 매표소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계산하고 표를 끊을지 몰라 고민하다 멀리보이는 개찰구 옆에 있는 창구의 역무원을 찾아갔다.

근데 의자하나 놓으면 딱 맞는 조그만 창구 공간 내에 있는 역무원의 몸집이 장난이 아니다. 간이 박스 같은 창고가 꽉 찰 지경이다. 일본어를 몰라 가는 역 이름만 어줍잖은 영어로 물으니 쓰모선수 만큼 큰 사람이 작은 눈으로 돌아보았다.

하지만 역시 영어 못하는 아저씨가 그래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난 거기서 차표를 살수 있는 줄 알고 돈을 내밀자 그는 손사래를 치면서 그 큰 몸집을 자리에서 일으키며 잠시 기다리라는 시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안쪽으로 사라지더니 내가 있는 쪽 옆문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자동발매기 앞에 직접 가서 내가 가고자 하는 역의 차표를 누르더니 돈을 넣으라고 했다. 이어서 중간에 갈아타는 역을 가르쳐 주고는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고 두 손을 허리춤 앞에 가지런히 모으고 종종걸음으로 앞서간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에서 나온 거인 같은 사람이 몸을 웅크리고 종종걸음으로 가는 모습을 보니 우스운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지하철 자동개폐구 앞에 서서 표를 넣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도우조...' 라고 말하면서 개찰구 안으로 안내를 한 후 인사를 하며 잘 가라고 손을 흔든다.

감동이었다. 생김새는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그 얼굴에 웃음을 띄우니 정말 세상 어떤 사람보다도 착하고 잘 생긴 천사같아 보였다. 모든 일이 몇 마디의 말만으로 이루어졌다. 그 사람은 영어를 못하고 난 일어를 못하니 그냥 몸짓 손짓과 말 몇마디로 모든 대화가 통한 것이다.

아무리 같은 말을 해도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오해와 다툼이 있는가. 서로의 거리감도 멀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 몇 마디의 말로 서로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체험했다. 공기도 좋고 기분도 좋은... 참 좋은 밤이었다.

박재우(경북대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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