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그라운드)나를 전율케 한 '전차군단' 카리스마

입력 2006-06-10 09:24:49

세계인의 축제.'월드컵 축제'의 날이 밝았다. 오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루종일 텔레비전 앞에 앉아 월드컵 특집 방송들을 보면서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랬다.

9일 오후 11시 30분. 드디어 개막전이 벌어지게 될 뮌헨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한껏 달아오른 축제의 분위기를 즐겼고, 그라운드 전체를 붉은 색으로 물들인 카펫(?) 위에서는 성대한 개막식이 펼쳐졌다. 독일 전통 춤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와 함께 이번 개막식에서는 월드컵 역대 우승국들의 주요 선수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폴 브라이트너, 블랑, 펠레, 베베투, 보비 찰튼 등등 그때 그 당시, 축구의 역사를 주도한 인물들이 눈가의 주름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뮌헨 스타디움에 입성했다.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의 개막 선언과 함께 터진 뮌헨 스타디움에 움집한 6만여명의 환호성은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독일과 코스타리카. 18번째로 맞이하는 월드컵의 첫 번째 경기가 뮌헨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독일 관중들의 환상적인 응원과 함께 막을 올렸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독일 축구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과거 독일 축구가 전성기일때 그들의 매력에 한껏 취해있었기 때문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실수가 적고, 냉철하며, 승부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내는 그들의 축구 스타일은 브라질, 나이지리아, 카메룬 등의 국가들이 화려한 발기술과 장난기어린 페인트 동작으로 많은 관중들의 시선을 끌어모을때, 묵묵히 승리를 쟁취하는 실리를 찾았다.

제 아무리 '강호'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할지라도 결코 독일의 냉철한 경기운영 앞에서는 별다른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유로 96. 그때 당시의 독일 대표팀은 나의 동경의 대상이었고, 독일 선수들은 나의 우상이었다.

이후, 98 프랑스 월드컵을 기점으로 독일 축구의 냉철한 카리스마는 사라졌고, 세계 축구팬들로 하여금'녹슨 전차군단'이라는 비아냥섞인 닉네임을 얻어야 했다. 독일 축구의 끝없는 몰락은 그들을 사랑하는 많은 축구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나 역시 그때 당시 독일 축구의 끊임없는 패배에 아쉬움을 토로하며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코스타리카와 벌인 2006 독일 월드컵 개막전은 독일 축구의 위력을 유감없이 뽐낸 경기였다. 물론 이 경기 하나로 독일 축구가 과거의 위용을 완전히 되찾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필립 람, 클로제, 프링스가 터뜨린 골들과 열띤 독일 관중들의 응원은 나를 잠시나마 과거 그 막강한 위용을 자랑했던 독일 축구의 향수에 빠져들게 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확하고 교과서적인 패스와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상대를 끊임없이 압박하며 그라운드 전체를 장악하는 카리스마. 멋지고 시원스런 슈팅, 만원 관중이 움집한 뮌헨 스타디움의 위용 등등.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비록 코스타리카의 특급 골잡이 완초페에게 완벽한 두 차례의 득점 찬스를 허용하긴 했으나 오래간만에 독일 축구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경기였다.

브라질, 잉글랜드, 이탈리아 등등 워낙 많은 강호들이 참가한 이번 월드컵 대회에서 독일의 우승을 장담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홈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인 만큼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선전하길 바란다.

이수열(대학생·'한눈에 축구의 전략을 읽는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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