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녀 바르바라를 기억하라
"성녀 바르바라를 기억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다오."
병인박해(1866) 때 이양등(베드로) 김종륜(루가) 등과 함께 울산 장대벌에서 참수 당한 허인백(야고보)은 경주 단석산 범굴을 급습한 포졸들에게 체포돼 경주관아로 끌려가기 직전, 아내에게 그렇게 당부했다.(병인치명사적 권3, 박조예의 증언) "성녀 바르바라를 기억하라!" 허인백 순교자는 왜 마지막 순간에 바르바라 성녀를 떠올렸을까. 바르바라는 세계 가톨릭사상 가장 기구하면서도 가장 용감한 순교자 가운데 한명이다. 아름답고 영특한 바르바라가 가톨릭 신자가 되자 귀족인 아버지는 못마땅했다. 딸 바르바라를 가혹하게 때린 뒤 재판관에게 넘겼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나오는 예수처럼 갈퀴 채찍으로 맞아 온 몸은 찢어졌고, 배는 불로 태워지는 끔찍한 고문을 당한 바르바라는 탈혼상태로 감옥에 던져졌다. 그날 밤, 주님이 나타나 바르바라를 위로했다. 바르바라의 상처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 장대벌에서 참수, 진목정에 묻혀
'감옥의 기적'을 본 재판관은 더 혹독한 고문을 가했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자 참수형을 선고했다. 사형장으로 끌려간 바르바라에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터졌다. 형리의 도끼를 빼앗은 아버지가 딸의 목을 직접 친 것이다. 딸의 목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치더니 아버지는 즉사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신앙을 지킨 바르바라는 '임종자의 주보', '군인의 주보'로 존경받고 있다. 그런 바르바라처럼 허인백은 최후의 순간에도 성호를 긋고, 평온 속에 성모 마리아를 찾았다. 이양등과 김종륜 역시 마찬가지 였다. 김종륜 허인백 이양등 3인 순교자는 진목정에서 경주진영(현 경주문화원)으로 끌려와 고문을 당한 뒤 울산 장대벌에서 참수됐다. 허인백의 아내 박조예 여사는 시신을 수습, 울산 동천 강둑에 묻었다가 마지막으로 잡혀갔던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 진목정으로 옮겼다. 다시 천주교 대구대교구 감천리 묘지에 이장됐다가 병인박해를 잊지 않기 위해 그 100주년 기념 성당으로 봉헌된 대구 복자성당(신천동)에 안장됐다. 현재 경주 진목정에는 허묘가 남아있다.
◆ 슬픔 위로하는 묵상 절로 이뤄져
병인박해의 수난지인 경주 진목정은 순교자들이 선혈을 뿌려 은총의 땅으로 바꾼 성지 가운데 하나이다. 순교성월(9월)이 아니어도 진목정을 찾는 발길은 꾸준한데, 이곳에서는 고통 속에서 정화된 영혼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서까래가 손으로 만져질듯이 낮은 공소에 들어서면 십자고상과 성모상이 반겨준다. "다 잘 될 테니, 세상 근심 잊어버려라!" 진목정 순례를 하다보면 이 세상에서 묵상을 통해 위로받지 못할 슬픔과 고통은 없는 것을 절로 깨닫는다. 인간적인 잣대, 이익을 앞세우는 셈법으로 다 밝히고 따지기 힘든 일이 생기면 한걸음 물러서서 묵상을 하고, 그를 통해 위안을 얻고 또다시 용기를 내 세파를 헤쳐갈 수 있는 내공이 쌓인다. 공소 옆 돌계단을 따라 허인백 이양등 김종륜을 합장했던 묘를 지나 단석산 범굴로 이어지는 14처를 오르다보면 성서에 무려 366번이나 나오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를 알게 된다. 아무 죄없이 수난 당하고, 부활한 예수를 떠올리면 세상 아픔을 툭툭 털고 일어날 지혜와 용기가 어느새 마음 가득 넘친다.
글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msnet.co.kr 사진 정우용 기자 v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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