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역구도 극복'은 정공법으로

입력 2006-06-08 08:47:12

5·31 지방선거 결과는 한가지 진부한 교훈을 새삼 확인해 주었다. 아무리 급하다 해도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쓸 수는 없다는 교훈이다. 이른바 '지역구도 타파'에 관한 이야기다.

5·31 지방선거는 사실상 지난 2월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선거용 개각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어 선거를 겨냥한 선심 행정의 문제도 제기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선 당파성을 떠나 거의 모든 언론이 비판하고 나섰다. 혹독한 비판이 많이 쏟아졌지만, 정부여당은 그런 비판에 개의치 않고 모든 걸 뜻대로 밀어 붙였다.

정부여당의 뜻을 선의로 해석하자면, 이번 기회에 지역구도를 타파해 보겠다는 열망이 앞섰을 것이다. 특히 영남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지역구도를 타파할 수 없다는 건 이미 김대중 정권의 이른바 '동진 전략'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게 입증하지 않았는가. 정부여당의 그런 자세에 깔려있는 전제는 사실상 '지방 모독'이었다.

"지방 촌사람들, 잘 보세요. 장관 하기가 쉬운 겁니까? 장관 내려보낼테니 찍어 주세요. 돈 없어 죽겠죠? 돈 내려보낼테니 찍어 주세요."

그런 수법으론 지역구도는 극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할 행정이 그렇게 정략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걸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는 건 오히려 지역 차원에서 "빼앗긴 정권 되찾자"는 욕구만 자극할 뿐이다.

상호 오해가 난무해서 그렇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지금과 같은 지역구도를 지지하거나 환영하는 사람은 없다. 지역구도 극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대전제는 진실성과 성실성이다. 정권의 공정성부터 확보하는 게 생명이다. 선거판에서 "힘 있는 여당 후보를 뽑아야 지역발전이 된다"는 구호를 외치는 게 상식으로 통용되는 한, 그리고 그런 '상식'을 정권이 앞장서서 유포하는 한, 지역구도는 극복될 수 없다.

그런데 노무현정권은 정반대되는 두가지 일을 동시에 했다. 정권의 공정성을 제도화하고 시스템으로 작동하게끔 공을 들이기는커녕 오히려 그걸 훼손하면서 정치구호로만 '지역구도 타파'를 외쳐댔다. 유권자들의 불신과 환멸만 키웠다.

우리 인간은 묘한 동물이다. 불량끼가 있는 사람의 거짓말엔 별로 화내지 않지만,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겐 불같이 분노한다. 전자의 거짓말이 후자의 거짓말에 비해 훨씬 악성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신이 속았다는 점이다. 이게 바로 민심이 노 정권으로부터 떠난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라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지역구도 극복의 출발점은 "힘 있는 여당 후보를 뽑아야 지역발전이 된다"는 선거 구호를 지역주의 선동으로 간주하는 의식 개혁이다. 그리고 그 의식개혁을 뒷받침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각 지역에 대한 국가 정책 집행이 연고와 인맥 중심의 로비에 의해 결정되지 않게끔 하는 것이다. 각 지역의 낙후 정도와 각 지역에서 만든 발전전략의 내실과 창의성을 엄정 평가하여 지원하는 등 선의의 경쟁을 하게끔 유도한다면, 누가 감히 "힘 있는 여당 후보를 뽑아야 지역발전이 된다"고 말할 것이며, 또 어떤 유권자가 "우리 지역 출신 정권 만들어야 지역발전 된다"고 믿겠는가.

노정권이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수많은 위원회를 양산했으면서도 왜 그런 평가를 공정하게 할 수 있는 위원회는 만들지 않은 것일까? 지역구도 타파를 가장 큰 목표로 내세운 정권이 도대체 왜 그랬을까? 너무 성급하게 서두른 나머지 진실성과 성실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은 아닐까?

한국인들은 진실성과 성실성이 결여된 사람이나 세력을 좋아하지 않는다. 역량은 없으면서 말로만 큰소리 치는 사람이나 세력도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명분만 휘두르면서 독선과 오만까지 범한다면, 그건 첫 번 째 응징 대상이다. 대다수 유권자의 입장에서 이념이니 정치적 성향이니 하는 건 두 번째 문제다. 지역구도 극복은 진실성과 성실성에 기반한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오래 걸릴 것 같지만, 변칙적인 방법보다는 정공법이 훨씬 더 빠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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