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코너] 천성산 '터널공사 재개' 판결

입력 2006-06-06 07:20:00

대법원이 지난 2일 "경남 양산시 일대의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를 중지해 달라."는 공사착공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2003년 10월 소송이 제기된 후 2년8개월 이상 걸려 내려진 판결이다.

지난 3월 대법원이 새만금 사업과 관련해 내린 판결과 마찬가지로 환경 보호보다는 개발 쪽에 무게를 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환경이냐 개발이냐의 논란은 다를 바 없다. 이번 소송은 또 도롱뇽을 소송 당사자로 내세워 논란을 일으켰지만 대법원은 이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환경 단체가 사법부에 심판을 의존하는 기존의 운동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환경 보호냐 국책사업 지속이냐

대법원은 대한지질공학회,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등의 보고서를 토대로 천성산 터널 공사와 환경 침해의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환경 파괴가 분명하지 않은데 공사를 중단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지난해 진행된 민·관 환경영향공동조사의 결과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또 현재 나타나고 있는 지하수, 계곡수 고갈이 터널 공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 입증되면 대법원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판결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개발이냐 보호냐로 분명하게 갈린다. 이는 4월4일자 Hi Study '새만금 판결 논란'에서 다룬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양자 간의 차이와 각각의 논리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 도롱뇽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나

이번 소송은 '도롱뇽 소송'이라고 불릴 만큼 소송 당사자 적격에 대한 논란도 일으켰다. 국내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생소한 일이었기 때문. 대법원은 "도롱뇽이라는 자연물이나 자연 자체는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로 볼 수 없다."는 1, 2심 결정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천성산 공사 중지에 대한 판단과 별개로 대법원이 환경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선진적인 평가를 받을 기회를 놓쳤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의 경우 자연물에 법적 권리를 준 사례가 수없이 많은 것으로 보고된다. 일본 홋카이도의 다이세스 산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가 터널 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이 산에 서식하는 '우는 토끼'를 원고로 소송을 제기해 30년 만에 승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만약 대법원이 도롱뇽의 원고로서의 지위를 인정했다면 어떤 파장이 있었을까?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법 테두리 안에서 자연물을 법적 당사자로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세기에 걸맞는 환경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법적 당사자로 인정하는 '법인'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판사들을 헷갈리게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이젠 '자연의 법적 권리'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일어나야 할 때다.'(인터넷 언론 칼럼)

▨ 판결 이후 방향

천성산 사건은 삼보일배, 단식 등 관련자들의 처절한 투쟁으로 인해 유례없는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결국 개발 쪽의 논리에 손을 들어줬다. 응당 이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다. 소모적인 논란 때문에 수조 원의 예산이 낭비되고, 국책사업을 힘으로 막는 전례를 만들고, 부산과 경남 등 지역 주민들에게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힌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법원 판결이라는 최종 결정에 순응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새만금사업과 더불어 대형 국책사업 관련 대표적 소송이었던 천성산 터널공사 재판까지 공사 재개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은 헌법상 환경권을 근거로 개인이 대규모 국책사업의 공사 중지를 청구할 권리는 없다는 기존 판례를 유지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나 환경단체, 주민 등 이해당사자가 최선의 해결책에 합의하지 못하고 사법부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긴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경부고속철을 조속히 완성하는 일이다. 시민단체도 지난 2월 공동조사 평가 후 발표했던 것처럼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수용하고 공사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반면 환경단체 일각에서는 법을 마지막 보루로 보고 그에 호소해 온 환경단체의 기존 전술을 수정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권력의 3부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법원에 시대를 선도하는 가치에 기반을 둔 판결을 기대하는 것부터 잘못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정부, 의회가 개발주의에 경도돼 있는 것만큼이나 법원 역시 개발주의에 포박돼 있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일단 막고 보자는, 또 뚫고 보자는 식의 공세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최후 수단'으로 법원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염두에 두면 마지막까지 다른 '수'를 찾아보는 게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일단 대법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패한 뒤에는 여론의 지지를 얻기가 대단히 어려워진다는 현실을 염두에 두면 더욱 그렇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천성산 사건 일지

1990. 6. 15 천성산 관통 고속철도 노선 확정

2002. 12. 4 노무현 대선 후보, 천성산 터널 백지화 공약

2003. 2. 5 지율 스님 부산시청 앞 1차 단식 농성

3. 7 노 대통령 "공사 중단하고 대안노선 검토 추진" 지시

5. 12 국무총리 산하 대안노선 및 기존 노선 재검토위원회 기존 노선 유지 결정

10. 5 지율 스님 2차 단식 농성

10. 15 미타암, 내원사와 도롱뇽, 부산지법에 공사착공 금지 가처분 신청

12. 2 천성산 구간 공사 착공

2004. 4. 9 울산지법, 가처분 신청 각하 및 기각

6. 30 지율 스님 3차 단식 농성

8. 25 정부 "항고심 판결 때까지 공사 중단 및 공동 환경조사" 약속

11. 29 부산고법, 가처분신청 항고심 각하 및 기각

2005. 2. 3 지율 스님 단식 100일째

2. 3~11. 30 공사 중단

2006. 6. 2 대법원 재항고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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