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초등학교 축구부에 선발되어 유니폼을 처음 지급받은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설레이고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솔직히 조금은 어색했다. 축구는 내가 지금껏 해본 운동 중에 가장 어려운 운동이었다. 열심히 한다고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창의성과 예술성이 본질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브라질 선수들이 부럽다. 그들은 때로 '신의 영역'에서 노는 것 같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부터 TV로 중계되는 월드컵 경기는 거의 다 본 것 같다. 스포츠 마니아였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경기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때의 한국과 멕시코전이다. 당시 미국 유학중이던 나는 IMF 여파로 주말에 뉴멕시코주 알버커키의 주말 벼룩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98년 6월13일 아침 나는 집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한국과 멕시코전 녹화를 부탁했다.
벼룩시장에는 히스패닉계 장사치들, 특히 멕시칸들이 많았다. 그들은 장사보다 집에서 가져온 TV에 온 신경을 쏟으며 괴성을 질러댔다. 그들의 탄식과 환호를 통해 어느 팀이 이겼는지 알았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는 귀로 월드컵을 보았던 것이다. 경기 후 시장에서 축제를 벌이는 그들의 모습을 뒤로한 채 나는 생업에만 열중했다. 외로웠다. 어린 시절부터 다락방에서 스포츠 잡지를 혼자 몰입하여 보면서, 펠레, 크루이프, 차범근 그리고 고교야구와 복싱 등 스포츠에 열광했던 '스포츠 키드의 생애'는 나이와 삶의 무게 속에서 그렇게 마감되어 갔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의 백미는 프랑스의 우승이었다. 나는 브라질과 정면승부해서 제대로 이긴 팀을 아직 보지 못했다. 94년 월드컵 본선에도 올라가지 못했던 프랑스가 홈팀이라는 이점은 있었지만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3대0으로 완파했다. 브라질이 큰 경기에서 완패당한 적은 내가 알기론 프랑스전이 처음이다.
세계 축구가 전술적으로 닮아가고 있지만 브라질은 아직도 자유롭고 본능에 충실한 축구를 한다. 축구에 관한한 우성인자들의 집합체인 브라질은 상대팀들을 주눅들게 만든다. 나는 그것이 항상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빗장수비보다는 터키 투르크 전사들의 투혼에 더 진한 매력을 느낀다. 98년 조직력과 압박 축구를 통해 승리한 프랑스는 자신들만의 '아트 사커를 창출했고 이는 우리 한국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솔직히 축구의 '파시즘'과 '정치성'이 별로 달갑지 않으면서도 국가대항전 시합을 보노라면 어쩔 수 없이 감정이입이 일어난다. '확신범'들의 축제인 스포츠는 이성이 아니라 비이성의 공간이자 마당이다.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것을 누가 말릴 수 있으랴. 개인적으로 2006독일월드컵에서 한 단계 진화된 축구를 보여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이번 월드컵을 귀가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걸 다행으로 여긴다.
전용배 (동명대학교 스포츠경영학과 교수)
※ 전용배 씨는 부산 동명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로 미국 유학 시절 멕시코인들과 함께 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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