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에 혼돈의 회오리

입력 2006-06-04 12:35:49

한국 경제가 여당의 사상 최대 참패라는 지방선거 후폭풍에 흔들리고 있다.

기존의 경제 정책 기조를 놓고 정부와 여당간의 갈등이 커질 것으로 보이며 국민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새로운 개혁정책은 중장기적인 효과를 불문하고 논의자체가 보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이런 혼란과 불확실성은 하강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한국 경제를 더욱 짓누르는 악재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적지않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경제정책 불확실성 증폭..조세정책 '흔들'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은 당정 간의 엇박자에서 곧바로 드러나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재정경제부 등 정부는 조세와 부동산 등 주요 경제정책의 변화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여당 내부에서는 방향 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박병원 재경부 차관은 지난 1일 정례 브리핑에서 "경제정책의 일관성은 유지될 것"이라고 천명했지만 여당은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여과없이 정책에 반영하겠다"며 세금과 부동산 정책의 수정을 예고했다.

경제정책 수정에 대해서는 여당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에서 민심을 확인한 이상 경제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쇄신론'과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기보다는 개혁에 집중해야 한다는 '개혁론'의 대립이 예상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간, 그리고 여당 내부에서의 이견 조율 내지는 해소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분간 경제정책의 혼란은 불가피하고 불투명성은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 관계자는 "여당의 분위기 등을 볼 때 지방선거 이후로 예정돼 있던 주요 경제정책 추진 일정을 제대로 맞추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 경제정책 어느 정도 수정되나

경제정책의 근본이 흔들릴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정책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주요 정책들의 기본방향이 무너지면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급전직하로 떨어지면서 나라는 더욱 혼란상태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방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미세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부동산 거래세(취득세.등록세)의 경우 종합부동산세 세수와 거래세 세수 등을 감안해 적절한 시점에서 내린다는 것이 정부의 당초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에서는 인하시기, 인하폭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이 나오지 않았고 인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았던 만큼 정부의 의지가 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이번 선거 참패를 계기로 거래세 인하폭을 가능한한 확대하고 시행시기도 앞당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거래세는 올해 1월부터 개인간 주택 등록세율은 1.5%에서 1.0%로, 개인간 취득세율은 2.0%에서 1.5%로 각각 인하됐다.

재산세에 대한 탄력세율 적용요건을 엄격히 하려는 계획도 이번 선거결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정부는 지자체별로 재산세의 50%를 깎아줄 수 있도록 하는 현행 탄력세율제도가 '동일가격 동일 세금' 원칙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적용기준을 대폭 강화해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지자체들이 재산세를 함부로 깎아주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을 이행하려면 지방세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유권자들의 정서를 감안하겠다는 열린우리당이 선뜻 나서줄지 상당히 불투명하다.

특히 일부 지자체장들은 재산세 인하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는 점에서 탄력세율 제도 수정은 수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실수요자나 고령자들의 세금 납부시기를 늦춰줌으로써 세부담을 줄여주는 방안도 다시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8.31대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꾸준히 제기된 이 같은 과세이연 조치는 부동산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선택되지 않았으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 향후 조세개혁 조치 험로 더욱 문제는 기존 정책 뿐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려는 조세정책들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데 있다.

정부는 중장기세제개혁, 자영업자 과표노출 방안, 비과세감면 축소 등 조세개혁 작업을 이달부터 진행해야 한다.

공청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해야 하고 가을 정기국회에 맞춰 관련 법률 개정안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개혁조치들은 불가피하게 납세자들의 불만을 사기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는 논의자체를 꺼리고 있는 분위기다.

정부는 이런 조치들이 세금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세제를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여권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는 하다.

합리화 자체는 ▲ 불형평성을 해소하고 ▲ 탈세를 못하도록 하며 ▲ 목적을 이미 달성한 세금감면은 종료한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특정인들의 세부담을 사실상 늘리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위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는데 있다.

국가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지만 이를 위한 재원 마련에는 모두가 함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 혼란은 경제에 타격

이런 정책의 혼란은 가뜩이나 불안해지고 있는 경제에 큰 타격을 준다.

생산, 소비 등의 지표는 경기가 아직 회복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여주고 있지만 기업과 소비자들의 심리지표와 경기선행지수 등은 앞으로 경기가 하강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잠시 숨을 죽이고 있는 국제 유가와 환율이 언제 다시 먹구름으로 다가올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정책에 대한 불투명성이 장기간 지속되고 경제정책이 정치논리에 휘둘린다면 한국 경제는 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경제는 회복세 지속과 하강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정치적 이념이나 이상에 토대를 둔 인기영합적 정책을 추구하기 보다는 '생활 경제' 복원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선거 때마다 경제정책의 방향이나 내용이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런 현상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선거 결과가 조세 등 경제정책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정책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등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여당이 선거에 졌다고 세금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 정치 바람이 더 거세진다는 점이다.

지방선거 이후 주요 대선 후보들의 대권 행보가 본격화되고 있고 정치권 개편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어 경제정책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왜곡되고 입법권을 가진 정치권의 관심 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경제정책 역시 정치적 철학이나 입장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중용의 미덕은 지켜져야 한다"며 "선거가 있다고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와 나라의 살림살이에 대한 논의를 중단하고 선거 결과에 따라 정책을 바꾸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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