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길 위의 삼국유사

입력 2006-06-03 05:07:24

길 위의 삼국유사/ 고운기 글, 양진 사진/ 미래M&B펴냄

서양에 그리스·로마 신화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삼국유사가 있다. 그러나 시점에서 풍요롭게 읽을 수 있는 삼국유사는 드문 편이다. 고전의 깊이를 전하되 살아 있는 오늘의 이야기로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삼국유사, 그것이 바로 '길 위의 삼국유사'이다.

삼국유사의 현장에서 설화의 장면들과 그 시대의 사람들을 불러내는 지은이의 상상력에 힘입어 독자들은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는 생생한 광경을 보게 된다. 2006년 7월 6일(음력 6월 11일)은 일연이 태어난 지 800년이 되는 날. 일생의 대부분을 무인정권의 혼란과 몽고와의 전쟁으로 보낸 일연이 민족의 고난을 극복하는 요체로 정리한 책이 '삼국유사'이다.

일연이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삼국유사를 썼던 것처럼, 책의 의미를 생생하게 만나는 일 또한 현장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삼국유사의 무대를 찾아가는 이 여행은 지역에 따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영광, 김제, 고창 등의 전라도, 2부는 경북 경주, 3부는 경주, 포항, 울산 등의 동해 바다, 4부는 양양, 강릉, 원주 등의 강원도이다.

1부 '백제에서 첫걸음을'에서는 영광 법성포를 시작으로 김제 금산사, 고창 선운사, 부여와 공주 등 삼국유사에서 놓치기 쉬운 옛 백제 땅을 돌아본다. 백제에 불교를 전하기 위해 법성포에 닿은 젊은 승려 마라난타를 떠올리고, 그를 기리며 시 한 수를 지었던 일연의 마음을 헤아린다.

백제 출신 승려로는 유일하게 삼국유사에 이름이 오른 '진표'가 바위에 몸을 던져 수행했다는 현장 의상봉을 직접 오르기도 한다.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지만 백제 불교의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절 선운사 편에서는 홀로 묵묵히 차밭을 가꾸는 우룡 스님의 삶을 이야기한다.

2부 '경주의 안과 밖'은 신라 문화의 정수를 찾아가는 경주 여행이다. 황룡사와 분황사는 옛 모습을 잃은 지 오래지만 지은이는 이곳을 신라 서울의 고갱이로 꼽으며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경주의 옛 사람들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분황사에서 만나는 희명과 원효, 황룡사의 승려 정수, 경주 남산에서는 오만한 효소왕을 깨우친 부처의 모습인 양 산 전체를 수놓은 마애불을 바라보며 평범한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과 소박한 예술혼을 생각한다.

3부 '동해 바다 풍경 셋'에는 죽어서도 나라를 지켰다는 문무왕의 바다무덤 대왕암, 연오랑과 세오녀가 살았다는 영일, 동해용이 아들들을 데리고 나타났던 처용암 등을 돌아본다. 역신에게 아내를 빼앗긴 처용 설화에서 신라 말의 혼란한 상황도 엿본다.

4부 '일연과 강원도'는 일연의 마음의 고향인 강원도의 절들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관음보살을 둘러싼 의상과 원효의 줄다리기, 하룻밤 사이 평생을 살아버린 조신의 꿈 이야기 등의 무대인 낙산사는 화엄의 장엄한 세계와 세속의 희로애락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해석된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