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포럼] 다시 유월은 왔는데

입력 2006-05-30 07:25:44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탑에 새겨진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글이다. 또 다시 6월이 왔다. 매년 6월 6일 현충일 추념행사를 준비하고 식을 거행하다 보면 6월의 햇살이 너무나 뜨겁게 느껴진다. 그런데 올 6월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더욱 뜨거울 것 같다. 5.31 지방선거에서 달아올랐던 국민들과 정치권의 관심이 코 앞에 다가온 독일 월드컵으로 쏠리고 있다. 우리의 붉은 악마와 국민들은 월드컵의 열기에 흠뻑 젖어 있고, 방송과 신문 등 언론들은 연일 관련 소식들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가슴 저린 6월인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의 남침으로 야기된 우리 민족의 동족상잔(同族相殘), 수 백 만명이 뜨거운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이산의 아픔을 나누는 눈물겨운 장면, 매년 현충일이면 국립묘지의 차가운 비석을 끌어안고 애통해 하는 백발의 노부모, 전쟁의 상처와 노쇠한 몸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참전상이용사들. 이는 오랜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부모이자 형제들의, 이웃들의 이야기다. 아직도 그 고통에서 신음하고 있는 살아있는 6월의 역사인 것이다.

또 다른 6월. 1987년 6월10일, 전 국민의 여망이 하나로 뭉쳐서 민주화의 물결이 용솟음 쳤다. 국민투표에 의한 대통령 직접 선출, 정치인들의 사면복권, 방송 금지된 음악들의 해금 등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삶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 한국민주주의 발전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수 없는 사건이 바로 6월 항쟁인 것이다.

이후 2000년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만남으로 분단 55년만에 남북의 최고위급회담이 개최돼 전 국민을 통일의 기대에 들뜨게 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의 6월은 언제나 뜨거웠고 치열했다. 그러나 오늘의 뜨거움은 기쁨과 행복의 환호이고, 어제의 뜨거움은 우리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호국영령들의 목숨과 피의 열기다.

오는 6일은 51회째 맞는 현충일이다. 국립묘지와 현충탑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수많은 묘비석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 묘비석 및 위패 하나하나가 모두 나라를 위해 산화한 호국용사들의 주검임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미어 온다.

얼마전 비무장지대 남쪽지역에서 수통과 총탄 세례에 갈기갈기 찢겨진 수통컵, 국군철모와 소총실탄, 숟가락 등 국군 전사자의 유품이 발견됐다. 이 수통속에는 50여 년 전 전사자가 미처 마시지 못한 물이 찰랑거리며 남아 있었다고 한다.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국군 전사자의 유해 찾기가 진행되고 있다.

가곡 '비목(碑木)'의 노래말 처럼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에 비목도 흔적도 없이 조국을 위하여 스러져 간 장병들의 유해가 철모 등 유품과 함께 지금도 발견돼 '전쟁의 생채기'를 떠올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장병들의 부모 형제와 전쟁미망인들, 참전상이용사들 중에는 아직도 우리들 주위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있다.

자칫 우리 모두 현재의 삶에 안존하며 월드컵의 열기에 빠져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잊고 외면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쯤 뒤돌아 볼 때다.

동작동 현충원과 충혼탑 등의 참배객도 크게 줄었다. 90년대 초만 해도 연간 100만명을 웃돌던 현충원 참배객은 급감해 최근엔 절반이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특히 학생들의 단체 참배를 제외하면 일반인은 연간 10만명에도 못 미친다. 대구의 앞산 충혼탑 등 지역 충혼탑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이 호국영령들을 너무 홀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립묘지나 지역 충혼탑을 찾아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이웃에 살고 있는 보훈가족들을 위로하며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호열 안동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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