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진실의 눈물

입력 2006-05-30 07:40:11

3월 하순 상담을 하던 도중 지은이가 느닷없이 울기 시작했다. 몸이 편찮으신 아버지, 그 때문에 서로 힘들어 하시는 부모님, 당장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형편이 서러워 운다고 했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사연을 듣노라니 내가 눈물이 흘러 지은이를 데리고 상담실 밖을 조용히 나왔다. 교정을 걸으면서 "지은아! 너의 고민을 내가 조금이나마 함께 하고 싶구나! 우리 같이 열심히 한 번 해 보자."라고 달래서 교실로 보냈다. 울먹이면서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 착한 지은이에게 너무 감동을 받아 며칠 뒤 1학기 분 급식비 20만 원과 격려의 편지를 쥐어줬다. 많은 보탬은 아니지만 올해 급식비는 도와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용기를 갖자고 다독였다.

지은이의 우는 얼굴에서 나의 중학교 시절 생각이 났다. 나는 어려서 가난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가난으로 인해 부모님이 다투시는 모습이 싫었다. 그럴 땐 한 바탕 울고 나면 마음이 편안했다. 그래서 지은이가 이해되었다. 어렵게 공고 기계과를 졸업하고 부모님을 졸라서 야간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힘들었다. 어느 겨울날엔 도서관에서 자취방에 돌아오니 연탄불이 꺼져 방안에서 전기 곤로로 물을 끓여 뜨거운 수증기로 몸을 녹이기도 했고, 때로는 점심시간에 누런 밀떡과 물로 배를 채웠다.

부모님을 떠나 혼자 고생을 많이 했지만 하소연 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 같은 옷만 입고 다니는 나의 모습을 대학 구내식당 아주머니가 알아보고 불쌍했던지 남편 옷을 가져다 주고, 토요일이면 식당 뒤 방에서 고기를 굽고, 맛있는 것을 따로 해 주셨다. 그럴 때면 나는 자취방으로 돌아와 너무 고맙고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한참이나 울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아주머니를 찾아뵈니 아들이 하나인데 의사가 되어 있었다. 나는 큰 절을 하면서 손을 잡고 저를 많이 도와주셔서 복을 받아 아들이 의사가 되었다고 하니 크게 웃으셨다. 아주머니는 내게 '진실의 눈물'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고 하시며 '평생 무엇을 하든지 너의 고향 양동마을의 선비정신을 잃지 마라'고 격려하셨다.

그 뒤 나는 교사가 되어 나에게 '진실의 눈물'을 가르쳐 준 많은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또 다시 '진실의 눈물'을 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가난은 국가도 구제 못 한다'는 속담이 있지만, 조금만 도와주면 어린 학생들은 큰 용기를 가져 뒷날 이 사회에 크게 봉사한다.

올 3월에도 나를 도와주시는 후원자 분에게 편지를 보내며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적었다. '학생의 은행 통장 계좌번호와 도와 달라는 이 편지를 누군가에게 부칠 수 있는 저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고 기쁩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아무도 모르게 어려운 이웃을 도와 용기를 주는 걸로 알고 있다. 부족함이 많은 내 이야기를 이렇게 쓰는 것은 가난으로 인해 타고난 능력을 발휘 못하는 학생이 없는지 우리 주위를 한 번 더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이유에서다.

이원수(경운중 교사·leewonsu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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