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중 미국이 미군 방어선에 접근하는 피난민들을 향해 총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당시 존 무초 주한 미국대사의 서한이 발견됐다.
당시 미 국무부 앞으로 보낸 이 서한은 1950년 노근리 학살사건이 자행된 바로 그 날 작성된 것으로, 한국전쟁 동안 모든 미군 부대에 대해 그러한 방침이 시달됐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미국 정부의 고위층도 이 같은 방침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첫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당시 무초 주한 미 대사는 딘 러스크 국무 차관보에게 보낸 서한에서 "만약 피난민들이 미군 방어선의 북쪽에서 출현할 경우 경고사격을 하되 이를 무시하고 남하를 강행할 경우에는 총격을 받게 될 것이다"고 보고했다.
서한은 또 이러한 방침이 제7기병연대가 노근리에서 학살을 벌이기 하루 전인 1950년 7월25일 미 8사단 고위 참모와 무초 대사를 대리했던 해롤드 노블 1등서기관, 한국 관리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결정됐다고 전했다.
이 회의에서는 한국 민간인들에게 남쪽 미군 방위선 쪽으로 이동하지 말라는 전단을 공중 살포하고, 경고 사격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미군 라인으로 접근할 경우 발포한다는 정책을 결정했다고 서한은 설명했다.
무초 대사는 이 서한을 쓰게 된 배경과 관련, 이같은 미국의 치명적인 전술로 인해 "미국내에서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라고 적었다.
그러나 이 회의에 참석했던 관련자들이 모두 타계해 당시 이 서한을 받은 미 정부가 어떤 행동을 취했는 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상태이다.
미 국방부는 AP통신의 특종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겁에 질린 병사들이 피난민 틈에 적이 숨어들어 오는 것을 우려, 명령없이 발포한 사건으로 "불행한 비극" "비계획적 살상"이란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미 국방부가 1999-2001년 16개월간에 걸쳐 벌인 진상조사 보고서에는 조사관들이 무초 대사의 서한이 담긴 마이크로 필름을 검토했음을 보여주는 리스트가 포함돼 있으나, 이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고 있다.
벳시 와이너 국방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300쪽에 이르는 군 조사보고서가 "입수 가능한 사실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미 육군사관학교의 전쟁범죄 전문가인 게리 솔리스는 무초 대사의 서한에 담긴 정책은 "통상적인 전시 절차에 벗어나는 것으로 전쟁관련 법률의 핵심 기본원칙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노근리사건의 사망자에 대해서는 미군측은 100명 이하에서 수백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한국인 생존자들은 약 400명이 사살됐으며, 대부분은 여성이나 어린이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노근리사건 이후에도 비슷한 살상행위들이 벌어져 수백명이 사망한 것으로 생존자들은 전하고 있다.
AP통신은 자체 조사에서 지휘관들이 피난민들에 대해 무차별 살상 행위를 명령 또는 승인했음을 보여주는 미군 자료들 가운데 비밀해제된 문건을 적어도 19건이나 찾아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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