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완장문화

입력 2006-05-29 08:15:30

다른 부서에 볼 일이 있어 방문을 했다가 업무처리를 위해 기다리고 있던 중 계속 울리는 전화를 대신 받아 준 적이 있다. 전화를 들고 '여보세요'를 말하기도 전에 들려온 목소리는 대뜸 '난데, 음 누구야'라는 것이다.

그 부서의 직위가 높은 사람인 모양이긴 했지만 어이가 없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나'라니. 어디로 전화를 걸었으며,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니 '거기 000부서 아니냐?'고 묻는 것이다. "맞다"고 하니 누구를 바꿔달란다.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오는 목소리로 보아 "왜 전화를 안 받았냐"는 꾸지람부터 시작해서 자기 할 말만 하고는 끊어 버리는 것 같았다.

전화를 걸때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먼저 밝히고 상대방을 찾아야 하는 것이 예의라는 것 쯤은 모르는 바가 아닐텐데, 직책상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고 대뜸 "난데...." 라니. '나'라는 사람이 그리 대단한 사람이란 말인가?

아니면 아래 사람이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뜻인가. 오늘날의 회사와 직장은 70년대의 군대가 아니다. 다양한 능력을 지닌 여러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능력을 합쳐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창조적인 공간인 것이다.

직책이란 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지, 상대방에게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라고 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직장이 좋은 곳이 되기 위해서는 능력있는 사람이 앞서가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나이가 많다고, 직책이 높다고 아래 사람들을 마구 대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유교적 문화의 토대 속에서 기업문화를 이루어 왔다. 그래서 상하관계가 뚜렷하다. 사적인 면에서는 그런 관계가 유지되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업무에서까지 그런 관계가 연장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떤 회사의 회장이 무슨 업무가 그리 바쁜지 몰라도 운전기사를 새벽부터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부리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운전기사는 이른 새벽에 시동을 걸어 집 앞에 기다리고 있었고, 자정이 넘은 시간 회장차와 사모님차와 아들차까지 닦고 있었다.

과도한 노동으로 그 운전기사가 운행 중 졸기라도 한다면 회장 자신의 안전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부하 직원은 하인이나 졸병이 아니다. 한 사람의 같은 동료라는 인식이 없다면 그 직장은 경직되고 업무능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이 변화되어야 한다. 완장만 차면 남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다는 '완장문화'를 버려야 즐거운 직장과 명랑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박재우(경북대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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