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으로 이루어진 장면 정권이 무너지고 5.16 군사정부가 들어서자 한국전쟁이래 문인 예술가들의 기항지였던 향촌동에도 사양의 빛이 깃들었다. 전쟁의 후유증 속에서도 문인들이 활보하며 술과 낭만을 길어올리던 거리에 재건복 차림이 출현하면서 향촌동의 풍속도도 달라졌다.
문인묵객들은 60년대의 고뇌를 안고 혹톨과 무랑루즈로 그리고 동성로와 봉산동으로 흩어졌다. 70년대에는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문인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무대가 더욱 분산되고 문학의 기층도 그만큼 다변화됐다.
60·70년대는 그렇게 저만치 흘러갔다. 가난했지만 술잔 속에 삶과 문학의 향기를 담았고, 눈물많은 세상이었지만 멋과 웃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때로 돌아가 보면 산업화와 정보화시대를 살아오며 잃어버린 오늘 우리의 원형이 조금은 남아 있을까.
60,70년대 대구 문단, 그 술집과 다방 그 골목을 풍미하던 숱한 이야기들. 그 사람들의 열정과 낭만 그리고 사랑과 우정과 절망과 파행의 자취를 '대구문단 일화 60·70'이란 이름으로 되살려 본다.***
1959년 청마 유치환의 '경북예술단체총연합회'(예련)와 목우 백기만의 '경북문화단체협의회'(경문)로 양분된 양상을 보였던 향토의 문화예술계는 5.16 군사정변과 함께 하나로 통합되는 계기를 맞았다.
5.16이 일어났던 해 가을인 10월 9일부터 엿새간에 걸쳐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 후원으로 경북문화인단체예술제를 가진 것이 예총 경북지부 발족의 뿌리가 되었다. 이듬해인 62년 2월 18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경북지부가 조직되고 1·2대 지부장에 청마 유치환(62,63년)이 선출됐다.
대구문단에서의 이같은 청마시대의 개막은 목우를 중심으로 한 토착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좌절과 실의의 시대이기도 했다. 향촌동의 청마계와 북성로의 목우계 문인들의 해묵은 반목은 후일 문단의 헤게모니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는 예총 회장이 산하단체인 문인협회 경북지부장도 겸임을 했다. 문인들이 문화예술계를 주도하던 시대였다. 제3대 박양균(64년), 4대 김성도(65년), 5·6대 김춘수(66~69년), 7대 박양균(70~71년), 8대 이윤수(72~73년) 예총 경북지부장도 문협 경북지부장을 함께 맡았다.
그러나 74년부터 문인이 아닌 미술가 서석규씨가 예총 지부장을 맡으면서 문인협회 경북지부장은 별도로 선출되었다. 9대 문협 지부장은 신동집(74~75년), 10대는 권기호(76~77년), 11·12대는 김원중 시인(78~81년)이 역임했다. 이 문인협회 경북지부가 오늘날 대구 문인협회의 전신인 것이다.
60·70년대 향토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청마 유치환과 대여 김춘수였다. 청마는 허무와 애련을 절규하는 문학적 기질로, 대여는 지적인 형상의 언어로 지역 문학을 주도하며 그 파장을 오늘에까지 남겼다. 50년대 중반 '서정의 유형'으로 아시아자유문학상을 받은 신동집의 문학적 성과도 빼놓을 수 없다.
전쟁의 포연이 멎고 피란문인들이 하나 둘 향촌동을 떠나자 향토문학계의 주역은 지역 문인들의 몫으로 돌아왔다. 이규헌의 '포'와 홍성문의 '꽃과 철조망', 이민영의 '잃어버린 체온', 김윤식의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 최선영의 '램프를 끝낼 무렵', 허만하의 '해조' 등이 당시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 뒤를 이어 정석모,박지수,최고,유여촌,전상렬,여영택,홍성문,윤혜승,서정희,이재철,서석달,이성수,김찬호,윤장근(尹章根),신현득,최정석,이우출,이만택,김정환,김시헌,김규련,정혜옥,예종숙,권기호,송영목,권오택,김상훈,김원중,금동식,권국명,정재익,조기섭,임도순,김녹촌,김홍곤,김경환 등이 60년대의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이들 중에는 일찍이 50년대부터 작품을 쓰기 시작한 문인도 있다.
군사문화 등장에 따른 60년대의 문학적 갈등과 동요를 얼마간 벗어난 70년대는 대구문단이 정체성 확립과 함께 자립기반을 세운 기간이었다. 참여와 순수의 논쟁 속에서 신세대들의 등장으로 문단에 다양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젊은 신인들의 활발한 진출에 따라 문학인구가 증가했고 작품도 양산됐다. 내용면에서도 현실에 대한 비판과 세련된 언어구사가 뒤따랐다.
윤태혁,정재호,이태수,박곤걸,이하석,이진흥,이기철,이재행,박해수,이옥희,조행자,최석하,이구락,박정남,이동순,김호영,강현국,구석본,남재만,이성복,양치상,송진환,송재학,조두섭,이상규,서종택 시인 등이 활약하며 오늘날까지 문단을 풍미해왔다.
시조 시인으로는 류상덕,김상형,김종윤 등이, 소설에는 송일호,이수남,윤장근(尹長槿),김광수,김경남,우호성 등이, 수필과 아동문학에는 허정자,김종욱,하청호,백정혜 등이 한 시대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60년대 초 문협 경북지부 창설 당시 60여명에 불과하던 문인 숫자가 70년대에 와서는 200명으로 늘어났다. 50년대 전후 상실과 혼란의 시대를 이은 60,70년대는 이렇게 80년대의 전성기 구가를 위한 징검다리를 놓으며 오늘날 대구문단의 질적.양적인 팽창을 이끌었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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